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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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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과 어흥 어흑

등록 2024-10-25 21:12 수정 2024-11-01 22:19
발가락이 아니라 용맹함이 닮은 거겠지. 장군님의 발걸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낱낱이 적혀 있는데, 너희들의 역사는 어디에도 적힌 데 없구나. 장군님과 너희와 원목벤치, 생김새와 용도는 달라도 모두 시멘트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알 수 없는 평등함과 위안을 준다. 2016년 제주 서귀포.

발가락이 아니라 용맹함이 닮은 거겠지. 장군님의 발걸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낱낱이 적혀 있는데, 너희들의 역사는 어디에도 적힌 데 없구나. 장군님과 너희와 원목벤치, 생김새와 용도는 달라도 모두 시멘트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알 수 없는 평등함과 위안을 준다. 2016년 제주 서귀포.


두 별과 두 발. 수가 같고 발음이 비슷한 까닭일까. 억지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박정희 장군의 머리에 있던 두 개의 별과 그를 뚫고 나간 두 발의 총탄을 자꾸 겹쳐 읽는다. 그를 향한 우리의 애증은 살았을 때나 죽은 뒤에나 멈춘 적이 없다. 일본군 경력과 군사쿠데타, 잔인했던 유신독재를 질타하는 이들은 어두운 곳을 바라본다. (시바스 리갈을 즐겼지만) 막걸리도 좋아했던 서민적 면모와 경제개발의 뚝심을 숭모하는 이들은 밝은 곳을 바라본다. 이미 사방팔방에 우뚝 세운 동상으로도 아직은 배고프다며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그를 세워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 든다.

하지만 멀었다.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자면, 박정희 장군은 한참 멀었다. 입신과 투쟁, 고난과 죽음을 둘러싼 서사에서 두 장군은 벌어진다. 충무공이라고 어찌 그늘이 없을까만, 이견이 없는 탓인지 기록이 부족한 탓인지 그에 대한 평가는 만장일치 칭송이다. 이순신 조형물은 광화문 네거리를 시작으로 팔도강산 없는 데가 없다. 구리부터 철, 시멘트, 돌, 석고, 플라스틱까지 재료 또한 각양각색이다. 가장 많이 세워진 곳은 학교가 아닐까.

오래된 학교 어딜 가나 이순신이 있(었)다. 특히 그가 활약했던 남해안 지역에서 충무공 조형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크기와 만듦새 또한 민망할 정도로 제각각인데 세월이 흐르고 나니 오히려 매력이 됐다. 인구 감소로 많은 학교가 문 닫은 요즘엔 수위 아저씨 대신 장군님과 친구들이 지킴이 노릇을 한다.

여기는 제주 서귀포의 한 초등학교. 이순신과 함께 자연과 자연을 흉내 낸 것들이 어지럽고 조화롭게 뒤섞여 있다. 거북 몸에 용 머리를 단 거북선, 호랑이와 사자, 자연보호 최우수상을 기념하는 원목벤치. 이 모두가 시멘트로 만든 것인데, 색칠과 마감으로 금속과 나무와 자연을 흉내 내고 있다. 유치한데, 왜 정겨울까. 장군 아래 호랑이와 사자가 뜬금없다 탓하지 말자. 용맹함으로 뭉친 이들이니까.

호랑이가 없던 일본은 조선의 호랑이를 부러워했다. 용맹함을 꺾고 싶어 했다. 임진왜란 때 장수 가토 기요마사는 조선호랑이 사냥에 혈안이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몸이 아프자 조선호랑이 고기를 먹으려 했다. 400여 년이 흘러도 갈망은 멈추지 않았다. 1910년 조선총독부는 사나운 동물로부터 조선인을 지킨다는 ‘해수 구제’를 핑계로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일본의 조선호랑이 사랑과 사냥은 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박 장군도 호랑이를 아꼈나보다. 1966년 부인 아들과 함께 찍은 흑백 기념사진에 호랑이가 나온다. 커다란 봉황 자수 병풍 앞에 선 그들 발아래 호랑이가 (가족 아니라 가죽으로) 납작 엎드려 있다. 1972년 온 가족을 담은 컬러 기념사진에도 호랑이가 깔려 있는데, 이 호랑이는 머리통을 살려둔 채 몸통만 가죽깔개가 돼 있다. 박정희는 죽어 이름을 남기고 가죽도 남겼다.

두 장군이 있고, 발아래 호랑이가 있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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