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똥꼬에 기름샘이 없어 물에 푹 젖고 마는 너희는 그 덕에 깊게 잠수할 수 있고, 그 탓에 늘 털을 말려야 하지. 한때는 귀한 손님 대접을 받았어. 겨울 가면 떠나던 너희는 어쩌다 눌러앉게 되었니. 지구온난화가 주범이라는데, 틀린 말이 아닐까. 사람이 주범 아닐까. 그 주범이야말로 유해동물 아닐까. 2024년 전북 군산 옥녀봉.
못생겼다. 잠수했다 나와 바위나 나뭇가지에 앉아 털 말리는 꼬락서니를 보면 비에 젖은 시궁쥐를 떠올리게 한다.
근사하다. (누구에게나 멋진 한때는 있지.) 검은 털을 잘 말리고 난 뒤 하얗고 노란 얼굴을 들어 석양빛을 바라보는 점잖은 모습은 펭귄을 닮았다. 1.5m를 웃도는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무리 지어 나는 모습도 감탄을 자아낸다.
괴이하다. 단체생활 하는 녀석들의 보금자리는 허연 똥밭이다. 새는 날기 위해 몸무게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방법 중 하나는 똥오줌이 마려울 때 바로 싸는 것이었다. 그 안에 하얀 요산이 섞여 있다. 쇠를 부식시키고, 식물을 말려 죽인다. 녀석들이 둥지 튼 나무는 똥오줌 세례를 견디다 못해 고사목이 된다. 마른 나뭇가지에 커다랗고 시커먼 새가 잎처럼 열매처럼 주렁주렁 앉아 있는 모습은 어딘가 고상하고, 어딘가 괴상하다.
철새였다. 중국과 러시아에 살다가 한반도에서 겨울만 보내고 떠났던 녀석들이 눌러앉기 시작했다. 대단한 기세로 수를 불렸다. 1999년 300마리에도 못 미치던 녀석들이 2015년엔 1만 마리가량으로 늘었고, 지금은 3만 마리를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대식가다. 10m 깊은 물속까지 들어가 고기 잡는 사냥꾼이다. 다 큰 잉어와 송어까지 한입에 꿀꺽 삼킨다. 중국과 일본에선 오래전부터 가마우지를 이용해 물고기를 낚았다. 사로잡은 가마우지 목에 고리를 씌우고 사냥하게 한 뒤,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는 녀석을 토하게 해 빼앗는 이 전통어업은 사양길에 들었지만, 신기한 관광상품으로 남아 이제는 눈요깃거리로 소비된다. 문제는 이 대식가들이 ‘사람의 물고기’까지 노린다는 점이다. 어민들의 아우성을 접한 지방정부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고, 2024년 환경부는 덜컥 가마우지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했다. 목에 고리 대신 현상금이 걸렸다. 5천원이던 게 2만원까지 뛰었다. 포털사이트에서 가마우지의 연관검색어는 ‘골칫거리’다.
가마우지에게 눈살 찌푸리는 이들이 또 있다. 묘하게도 주한미군이다. 전북 군산 미군기지 바로 옆에 입 벌어지는 규모의 서식지가 있는데, 가마우지 나는 때와 전투기 나는 때가 곧잘 겹친다. 2021년 새만금 수라갯벌 하늘에선 KF16 전투기와 가마우지 떼가 부딪히는 ‘버드스트라이크’가 촬영돼 논란거리가 됐다. 아는가, 수라갯벌은 ‘어쩌다 유해동물’ 가마우지뿐만 아니라 멸종위기 긴급 보호종인 저어새와 도요새가 마음껏 날고 새끼 치는 터전이다.
정부가 강행하는 새만금신공항은 이곳에 아스팔트를 덮는 일이다. 환경운동가들은 거대한 생태 파괴를 염려한다. 평화운동가들은 기존 군산공항이 그랬듯, 이 또한 미군의 군사기지로 실컷 활용될 거라 확신한다. 새만금 바다 건너 중국이 있지 않은가.
수라갯벌 가마우지의 운명은 어찌될까. ‘어차피 유해동물’, 쓸어 담아도 좋다 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머리에 무언가 후드득 떨어졌다. 생선 비린내가 덮쳤다. 까만 가마우지가 날다가 싼 흰 똥이었다.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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