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렇듯, 나도 이따금 새가 되고 싶다. 물고기나 말이 되고 싶고, 사자나 개미가 돼보는 상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찐’ 새가 되고 싶은 걸까. 사람이되 새가 되고 싶은 거 아닐까, 사람이되 물고기나 말이 되고 싶은 건 아닐까.
슈타델 동굴에서 ‘뢰벤멘슈’가 처음 발굴됐을 때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이었다. 나치는 인간 문명이 독일에서 비롯됐다는 믿음의 증거를 찾기 위해 고대동굴 발굴에 돈을 댔다. 전쟁이 터지자 작업은 중단됐고, 유물은 부스러진 뼛조각 더미로 상자에 담긴 채 지역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1969년, 튀빙겐대학의 고고학자가 먼지 쌓인 상자를 열었다. 난해한 퍼즐을 맞추듯 조각을 잇자 놀라운 형상이 드러났다. 거기에 사자가 있었다. 사람이 있었다. 매머드가 있었다. 따로가 아니라 한 몸이었다. 매머드 어금니를 조각해 만든, 사람 몸에 사자 머리를 올린 ‘뢰벤멘슈’, 즉 사자인간이었다. 탄소연대측정을 통해 4만 년 전 구석기시대 유물임이 드러났다. 인지혁명 이후 호모사피엔스가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첫 상징예술의 발견이었다. 누가 이 조각상을 왜, 어떻게 만들었을까. 사자도 사람도 아닌, 사자사람이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현대의 조각가가 돌칼을 들고 구석기시대 방식으로 따라 만들자 적어도 370시간 이상의 노동이 필요했다. 온종일 매달려도 여러 달 걸린다는 결론이었다. 흥미로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뢰벤멘슈 뿐일까. 사람이자 동물이고, 동물이자 사람인 ‘반인반수’는 동서고금에 두루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에는 말과 사람의 혼성체 켄타우로스가,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는 (사자사람이 아닌) 사람사자 스핑크스가, 우리나라 왕릉 둘레석엔 12마리 띠동물이 사람 몸을 달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과 신을 잇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중간지대에 자리잡는다. 동물은 신이 주신 삶의 선물이자, 신을 대리해 벌과 죽음을 내리는 존재였다. 고로 사람에게 동물을 입힌다는 건 ‘접신’이었고, 두렵지만 매혹적인 일이었다.
수만 년에 걸친 그 매력이 쉬 사라질까. 영국인 디자이너 토머스 트웨이츠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동물 되기’를 실천했다. 인간적 삶과 고뇌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코끼리가 된 인간’ 프로젝트 명목으로 예술상 기금을 받지만, 스스로 황당무계함을 깨닫고 ‘염소인간’으로 급선회한다. 해부학으로 시작된 그의 여정은 철학과 인류학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뇌신경학과 언어학의 돌부리에 자빠지며, 동물행동학에서 사경을 헤맨다. 트웨이츠는 마침내 염소가 됐다(고 인정해주고 싶다). 스위스로 건너가 염소 무리에 섞였고, ‘그 몸’으로 알프스산에 올랐다. 그의 반인반수 프로젝트는 2016년 괴짜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그노벨상을 받았다. 트웨이츠의 책 ‘염소가 된 인간’에 가볍지만 진지하고, 허술한데도 꼼꼼한 과정이 재밌게 담겨 있다.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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