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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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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텐이 몰래 부르는 노래

등록 2024-08-09 20:00 수정 2024-08-13 10:52
밀물이 들어오면 낮은 다리가 잠겨 오갈 수도 없는 작은 섬이었어. 너는 마치 집을 지키는 개처럼 나를 향해 울어댔지. 아니 짖었다고 해야 할까. 그 바람에 조용히 지나가려던 계획을 접고 사진기를 들었어. 뒤뚱뒤뚱 너는 걷는데, 눈 너머에선 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을까. 2023년 전라남도 신안군 화도.

밀물이 들어오면 낮은 다리가 잠겨 오갈 수도 없는 작은 섬이었어. 너는 마치 집을 지키는 개처럼 나를 향해 울어댔지. 아니 짖었다고 해야 할까. 그 바람에 조용히 지나가려던 계획을 접고 사진기를 들었어. 뒤뚱뒤뚱 너는 걷는데, 눈 너머에선 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을까. 2023년 전라남도 신안군 화도.


아이들의 착한 마음과 못된 마음은 때론 종잡을 수가 없다.

천사처럼 굴던 아이도 삽시간에 어린 폭군이 되곤 한다. 동물을 대할 때, 그런 돌변은 도드라진다. 크거나 사나운 동물 앞에서 아이들은 본능적인 공포감에 떨며 울지만, 작고 귀여운 동물에겐 무턱대고 손 내밀며 웃는다. 쓰다듬고 함께 노는 데서 멈추지 못할 때가 있다. 아이들의 대책 없는 손길이 동물의 생사를 가르곤 한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사람도 죽는데, 어찌 개구리가 무사할까. 괴롭힘은 언제나 즐거움과 손잡는다. 아이들만 탓할 노릇은 아니다. 더한 어른도 부지기수니까.

닐스 홀게르손은 말썽꾸러기 소년이었다. 하라는 공부는커녕 빈둥거리며 농장의 동물들을 골탕 먹이는 재미로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다. 신발을 던져 맞히는가 하면, 툭하면 꼬리를 잡아당기고, 귓속에 벌을 집어넣는 등 지나친 장난을 일삼았다. 어느 날 낮잠을 자고 일어난 뒤 요정을 사로잡아 괴롭히다가 그만 마법에 걸려 기절한다. 깨어나 보니 손바닥만 하게 작아져 있었다. 농장 동물들의 비웃음과 위협이 날아들었다. 희한하게 모든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닭과 오리가 쪼을 듯 달려들었다. 소들은 뿔로 들이받고 걷어차려고 했다. 고양이는 목을 물어뜯으려 했지만, 자신을 돌봐준 닐스의 엄마를 떠올리곤 앙갚음을 멈춘다.

한편 흰색 거위 모르텐은 기러기가 되기를 꿈꾸는 별종이다. 포기할 줄 몰랐다. 때마침 기러기 떼가 날아오르자 모르텐도 덩달아 날개를 폈고, 닐스는 거위를 붙잡으려다 등에 타고 만다. 앙숙이었던 닐스와 모르텐은 온갖 위기를 극복하며 긴 여행길에 친구가 된다. 둘은 결국 집에 돌아오고, 거위를 제물로 바쳐 마법을 풀려는 아버지에 맞서 친구를 지키려 나서면서 오히려 닐스에게 걸린 저주가 풀린다.

100여 년 전 스웨덴 작가 셀마 라겔뢰프가 쓴 ‘닐스의 모험’은 어린 시절의 내가 읽고 또 읽은 책이었다. 원제가 ‘닐스 홀게르손의 환상적인 스웨덴 여행’이고,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스웨덴 지폐에 거위를 타고 날아가는 닐스의 그림이 새겨졌다는 사실은 오랜 뒤에야 알았다. 거위가 기러기와 가까운 친척이라는 사실도, 개처럼 집을 잘 지키며 사람과 교감한다는 사실도.

먹어본 적 없는 푸아그라는 프랑스인의 고급진 입맛을 소개할 때마다 언급되는 바람에 이름만은 친숙하지만, 거위 간을 키우기 위해 동원되는 기술을 알게 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시절의 각인이란 얼마나 신묘한가. 어디서건 거위를 만나면, 눈앞에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보다가도 눈 너머에선 날아가는 거위를 떠올렸다. 그 등에 올라타고 온 세상을 여행하는 작은 나를 그렸다. ‘거위의 꿈’이라는 유명한 노래는 모르텐이 몰래 쓴 게 아닐까.

가끔은 내게 아직 꿈이 있긴 한가, 묻는다. 누굴 괴롭히며 살지나 말아야 할 텐데.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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