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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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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버스 돼지승객

등록 2024-05-31 10:57 수정 2024-06-05 03:56
너희는 귀엽게 말아 올린 꼬리를 마치 리본처럼 엉덩이에 붙이고 있었지. 딱 봐도 튼튼한 몸뚱이, 아기돼지의 귀여운 재롱, 드넓게 펼쳐진 녹색 대지는 그대들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아니 건강한 먹거리라는 사실을 증명서처럼 보여주더라. 멋들어진 사진과 차가운 창살은 비록 비대칭적이었지만. 그래서 울었던 거니, 그래서 우는 것처럼 보였을까.

너희는 귀엽게 말아 올린 꼬리를 마치 리본처럼 엉덩이에 붙이고 있었지. 딱 봐도 튼튼한 몸뚱이, 아기돼지의 귀여운 재롱, 드넓게 펼쳐진 녹색 대지는 그대들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아니 건강한 먹거리라는 사실을 증명서처럼 보여주더라. 멋들어진 사진과 차가운 창살은 비록 비대칭적이었지만. 그래서 울었던 거니, 그래서 우는 것처럼 보였을까.


2016년 1월4일, 손발이 오그라드는 겨울 아침이었다. 서울 양화대교 앞에서 만난 우리는 각자의 무거운 가방을 들고 전남 진도로 향하는 승합차에 올라탔다.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 아빠’로 굳어진 중년의 남자가 말없이, 하지만 성급하게 차를 몰았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에서 자식을 잃고 짐승처럼 울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누구 아버님’을 부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를 부를 때마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의 이름까지 함께 불러야 한다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힘겨웠다.

그 참사는 사람이 짐승 되는 데 삽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걸 일깨운 사건이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하루아침에 잃고 사람 노릇 할 수 없어 무너졌다. 누군가는 그저 책임에서 달아나기 위해 사람 노릇을 내팽개쳤다. 어느 방향으로 뛰든 사람 모습의 달리기는 아니었다. 짐승의 시간은 곁에 있었다. 아니, 안에 있었다.

떠오르는 건 부유물이었다.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의 몸 대신 오만 가지 부유물이 저절로 떠오르거나 수색 중 발견됐다. 그것들을 진도군청 창고에 넣어두었으나 한계가 있었다. 정리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더 망가지기 전에 혹은 ‘처리’하기 전에 사진으로 기록해주길 바란다는 유족의 요청이 있었다. 한두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여럿이 모였다. 사진사들은 진도군청 강당에 각자의 스튜디오를 만들고, 배정된 유류품을 감정이 절제된 각도와 노출로 단기간에 기록해야 했다. 무겁고, 무서운 숙제였다.

진도로 달리는 승합차 안은 내내 조용했다. 그게 오히려 편했다. 정읍휴게소에 잠시 머무를 때 굳은 몸을 펴려고 나왔는데, 저 앞에 커다란 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돼지 그림이 박힌 ‘이층버스’였다.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는데, 친구 하나가 저벅저벅 버스를 향해 걸어갔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펴보는 그 모습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돼지버스는 비어 있었다. 위층도 아래층도. 꿀꿀대는 승객들을 태우러 가는 길일까, 혹은 내려놓고 오는 길일까. 돼지를 태우든 내리든 그 버스의 목적은 하나일 것이었다.

분홍빛 큰 돼지가 갑자기 눈물·콧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게 아니었다. 하필 얼굴에서 아래로 길게 사진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옆에서 아기돼지 두 마리가 행복한 표정으로 놀고 있었다. 관계없는 장면을 관계있는 장면처럼 상상하는 못된 버릇 탓에 나는 잠시 어지러웠다. 죽음으로 달려가는 이층버스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은 어땠을까. 나가고 싶어도 내리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진도에 내린 우리는 각자의 작은 스튜디오를 서둘러 만들고, 온종일 사진을 찍었다. 이름 적힌 물건부터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까지. 이 사진들이 어떻게 사용될지 알 수 없을지라도.

누구의 친구였을까. 동물 인형도 여럿이었다. 바다에 빠졌던 원숭이를 보았고, 작은 새를 만났다.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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