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은 좀처럼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무언가 잡는다, 무언가 나른다, 무언가 먹는다, 무언가와 싸운다, 무언가로부터 달아난다. 가만히 쪼그려 앉아 벌레들을 바라보면 잠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데,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린다.
어릴 적엔 심심할 때마다 벌레들을 바라보며 놀았다. 시골만큼 다채롭지는 않겠지만 도시에도 벌레는 사람만큼이나 우글댔으니까. 어딜 가도 눈만 동그랗게 뜨면 거기에 벌레가 있었다. 녀석들의 신기한 모양새와 알 듯 말 듯 한 행동거지는 시간이 남아도는 아이의 눈길을 마냥 사로잡았다.
벌레를 보기 위해 벌레를 죽인 적도 많았다. 개미들이 사냥하는 걸 보려고 파리를 잡아 날개를 떼고 던져주곤 했으니 ‘날개 잃은 파리’는 얼마나 억울하고 아팠을까. 이따금 파리 입장이 되어보는 상상을 한 적도 있지만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녀석은 사람을 괴롭히는 벌레 따위에 불과하다는 혐오감과 내가 인간입네, 하는 우월감이 사이좋게 덕담을 나눴으니까.
벌레는 누나들을 굴복시키는 좋은 무기이기도 했다. 누나들에게 심술이 날 때면 슬쩍 곁에 벌레를 갖다 놓았다. 누나들은 질색팔색하며 비명을 지르거나 눈물을 찔끔거렸고, 고자질할 때도 있지만 부탁을 들어줄 때도 많았다. 난 참 짓궂은 놈이었다.
그런 짓으로 부모님께 혼날 때면 내 변명은 이랬다. “아니, 이 녀석들이 누나들을 물어 죽이는 것도 아니잖아요. 자세히 보세요. 엄청 귀엽고 신기하단 말이죠.” 나태주 시인이 ‘풀꽃’에서 노래했던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를테면 제목을 ‘벌레’로 바꿔도 이상할 게 없다고 어린 나는 주장했던 것이다. 물론 그따위 변명이 부모님께 통할 리 없었다.
나도 안다. 벌레를 향한 본능적 공포와 두려움을. 물론 그 공포와 혐오의 일부는 황당한 교육과 문화를 통해 학습된 감정이라는 사실도.
바닷가에 살다보니 갯강구를 자주 본다. 녀석들은 즉각적으로 바퀴벌레를 떠올리게 하는데, 심지어 영어 이름도 Wharf roach, 부둣가 바퀴벌레라는 뜻이다. 경상도에선 바퀴벌레를 강구라고 불러왔으니 갯강구는 동서양 모두에서 바닷가 바퀴벌레로 통한 셈이다. 생긴 것만 비슷한 게 아니다. 사람보다 더 빨리 지구에 등장한 화석 생물이며, 그 무엇보다 달아나는 모습이 닮았다. 다가가는 순간 달아난다. 너무 빠르게 달아난다. 하나 자세히 보면 다르다. 머리·가슴·배와 6개의 다리를 가진 바퀴벌레는 영락없는 곤충류지만, 갯강구는 갑각류에 속한다. 물 밖에 사는 드문 갑각류다. 바퀴벌레와 닮았다는 이유로 괜한 미움을 받아도 녀석의 애칭은 바닷가 청소부다. 떠밀려온 해조류와 작은 사체들을 말끔히 청소한다. 바닷가에 앉아 있다보면 쓰레기와 미끼를 바닷가에 버리고 가는 못된 낚시꾼들이 들어야 할 비명과 비난을 죄 없는 갯강구가 뒤집어쓰는 경우와 마주치곤 한다.
그래, 나도 처음엔 징그러웠지. (하는 짓을) 자세히 보고 나니 예뻤던 거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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