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는 우리가 먹는 물고기 가운데 가장 작고 귀여운 친구들이다.
못된 말이다. 멸치는 항의할지 모른다. “난 널 친구라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어. 나쁜 놈아, 너는 친구를 먹니?”
멸치에겐 미안하지만 그들은 정말 작고 귀엽고, 맛있다. 오랜 시간 사람의 먹거리였다. 그들보다 큰 바닷물고기에겐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물고기 가운데 가장 수가 많은데도, 크기가 작아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이름부터 멸시받는 기분이다. 첫 글자 ‘멸’은 멸할 멸(滅), 그물에 걸려 물 밖으로 나오면 금세 죽기에 붙여졌다. 어떤 이는 아무리 먹어도 멸할 수 없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조선 후기 정약전이 쓴 물고기 백과사전 <자산어보>에도 나온다. 업신여길 멸(蔑)에 물고기 어(魚), 멸어.
볶음부터 회나 젓갈에 이르기까지 먹는 법도 다양하지만, 잡는 법도 각양각색이다. 빠른 물살이 흐르는 길목에 대나무 발을 만들어 가두는 오랜 방법이 있는가 하면, 첨단 레이더로 멸치떼를 추적하며 잡아 올리는 방식도 있다. 말뚝에 그물을 고정하는 정치망이 있고, 무려 2㎞가 넘는 긴 그물을 바다에 흘려 펼치는 유자망이 있다. 대량 소비되는 젓갈용 멸치는 대개 유자망으로 잡는다. 멸치떼는 아가미가 그물코에 꿰인 채 포구로 끌려온다. 그들을 고스란히 그물에서 떼어내기란 어렵다. 젓갈용 멸치는 온전한 몸뚱이가 필요하지도 않다. 그래서 떼어내지 않고 털어내는 것이다.
어부 일고여덟이 폭 10m가량의 그물 끝을 치켜든다. 사정없이 내리친다. 그물코에 꿰였던 멸치들이 붕 떠올랐다가 한곳으로 쌓인다. 어떤 녀석은 운 좋게(?) 온전한 몸뚱이로 날아오른다. 대개는 머리와 몸통과 내장이 분리된 채 그물에서 벗어난다. 공중에 떠오른 멸치들이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아침 포구가 은빛으로 가득 찬다. 낭만적인 풍경이다. 그저 먼 데서 바라본다면.
어부들은 박자에 맞춰 무거운 이불을 털 듯 그물을 털고 또 턴다. 무려 2㎞가 넘는 그물을 끝없이 당겨가며 털어댄다. 누군가 요령을 피웠다간 옆 사람이 오롯이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티브이(TV)에서 온갖 궂은일을 다 해내던 ‘달인’ 김병만씨가 ‘멸치털기 미션’에서 포기한 채 울었다면 이 노동의 힘겨움이 설명될까. ‘너무 고단한 일이기에’ 이제는 멸치털기의 대부분을 이주노동자들이 맡는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이 ‘국민반찬’이 이주노동자들의 땀에 절여져 밥상에 오른다.
2024년 6월24일, 경기도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 큰불이 치솟던 그 시간에도 남해의 포구에서는 숨 가쁜 멸치털기가 한창이었다. 23명이 화마에 스러졌다. 17명은 이주노동자였다. 사람 목숨에 국적 따지는 일이 죄스럽지만, 그 숫자와 비율을 뭉개지는 말자. 그 비율은 이 땅 어디에나 있으니까.
은빛으로 반짝이는 멸치털기는 멀리서 보면 찬란을, 다가서 보면 착란을 일으킨다. 업신여겨도 좋을 존재란 있는가. 멸시해도 좋을 존재란 있는가. 멸치 좋지만, 멸시 나쁘다.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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