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지역 국도를 지나다보면, 상인은 없이 과일과 채소만 쌓여 있는 자그마한 매대를 이따금 만나게 된다. 이른바 ‘양심가게’다. 물건을 사는 손님은 가격표에 적힌 금액을 돈통에 넣고 가져간다. 무인판매를 하는 주인과 고객의 믿음으로 이뤄지는 거래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 서천사거리에서 상추, 호박, 고구마, 무 등 각종 농산물을 파는 무인점포가 9년째 운영되고 있다. 이 동네에 살며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파는 공병윤(61)씨는 ‘병윤네 무인마트’라는 상호 아래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놓았다. 공씨는 “하루에 3만~4만원어치가 팔리는데, 때로 돈을 안 내고 집어가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도시 지역에도 무인 출입시설, 무인 계산대, 보안시스템 등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무인점포가 늘고 있다. 용인의 ‘양심가게’에서 농산물을 판다면, 도시의 무인점포는 아이스크림과 샌드위치 등 간편 먹거리와 문구, 잡화 등 공산품을 주로 취급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서비스 수요가 늘어나면서 업종과 점포 수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무인점포를 이용해본 소비자는, 눈치 보지 않고 둘러보고 필요한 것만 살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도난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 무인점포 업주가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4차 산업혁명의 한 단면인 산업구조와 고용 변화를 실감케 한다.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줄어든 단순 업무 대신, 정보통신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영역에서 더 ‘인간적인 일자리’ 만들기가 절실하다.
사진·글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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