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완주산단9로 80, 옛 청완초등학교 운동장이 들꽃으로 가득하다. 노랑 한복판 짙은 빨강 무늬가 화려하게 대비를 이루는 기생초(황금빈대꽃·각시꽃·애기금계국으로도 불림)가 왁자지껄 뛰어놀던 아이들 대신 빈 운동장을 차지하고 있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풀을 관상용으로 들여와 심은 것이 들녘으로 퍼져나가 지금은 야생화가 됐다. 학교 문을 닫은 뒤 오래지 않아 운동장 전체를 뒤덮은 모습에 전문가들도 “일부러 씨앗을 뿌려 꽃단지를 만들려고 한 것 같다”며 강한 번식력에 혀를 내둘렀다.
1969년 완주 들녘 한가운데에 처음 문을 연 청완초등학교는 5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다. 통학을 위해 멀리 읍내까지 가야 하는 작은 농촌마을의 사정을 딱히 여겨 땅을 내놓은 지역 어르신 덕분에, 논 한가운데에 배움의 터전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때 500명이 넘었던 학생 수는 급기야 30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가까스로 버티던 학교는 산업단지가 들어선 읍내로 이전했다. 2020년 3월 교문이 닫히자 텅 빈 교정만 남았다.
청완초등학교 5회 졸업생이자 봉동읍 상구미마을 이장을 맡은 김종년(58)씨는 “아이들이 새로운 시설에서 더 많은 친구와 어울리며 배우고 있어 잘된 일”이라면서도 “작은 농촌마을에서 듣기 힘든 아이들 웃음소리가 나던 운동장”이라며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인구가 늘어난 읍내의 학교로 아이들이 등교한 뒤, 빈 운동장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들꽃들이 마을 사람들의 허전함을 달래주고 있다.
완주=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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