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탐조라는 게 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와 비슷해요. 평소 조심성 많고 은밀히 숨어 지내던 새들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거든요.” 철새 이동 시기를 맞아 새들을 위한 ‘레드카펫’이 깔린 어청도 탐조에 나선 한종현 버딩투어코리아 대표가 말한다. 전북 군산항여객터미널에서 배에 올라 2시간30분 정도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면 서해의 외딴섬 어청도에 닿는다.
4월 초 유리딱새 도착을 시작으로 어청도의 봄은 다양한 새들의 출현으로 북적인다. 초등학교 마당과 공터, 해안 산책길 주변 숲은 물론 어민들 집 앞 작은 텃밭까지 새들은 무대를 가리지 않는다. 쇠붉은뺨멧새, 유리딱새, 되새, 촉새, 노랑눈썹멧새, 흰배멧새, 검은딱새, 힝둥새는 봄철 이동 때 모습을 드러내는 단골손님이다. 개똥지빠귀, 호랑지빠귀, 되지빠귀, 흰배지빠귀 같은 지빠귀과 새도 빠지지 않는다. 어둡고 그늘진 곳을 좋아해 잘 눈에 띄지 않던 여름철새들이다. 바다 건너 먼 거리를 날다가 쉬어가려고 중간에 기착한다. 섬에 내린 철새들은 이틀에서 일주일 동안 휴식하며 기력을 회복한 뒤 다시 섬을 떠난다. 봄철 내내 새로운 새들이 들고 난다. (잠시 머물고 떠나면 ‘나그네새’로, 번식하고 남쪽으로 날아가 겨울을 나는 새는 ‘여름철새’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극소수만이 발견되는 희귀 나그네새는 귀한 손님이다. 이번 탐조에서 대륙검은지빠귀를 탐조 기간 내내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누른부리검은티티라고도 하는데 극소수만 발견되는 나그네새다. 유럽과 러시아, 중국에서는 거리에서 볼 수 있을 만큼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보기 어렵다. 육지에서 드물게 번식하고 떠난 기록이 있다.
홍비둘기도 깜짝 등장했다. 아열대성 새인데 서식지가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다. 중국 남부나 홍콩의 서식지에서 북쪽 번식지를 향해 가려다, 바다 건너 300㎞ 이상 날아 이곳까지 온 것으로 추정된다. 길 잃은 새에 가깝지만, 서해 섬에 드물어도 꾸준하게 모습을 드러내 ‘통과철새’로 분류한다. 어청도파출소 옆 텃밭에 앉아 정신없이 먹이를 찾는 모습을 발견했다. 염주비둘기로 오인할 정도로 닮았지만, 전문가에게 물어본 결과 홍비둘기로 확인됐다. 쇠종다리, 노랑배진박새, 개미잡이, 검은지빠귀, 붉은배지빠귀처럼 조류도감에서만 보던 나그네새가 잇따라 등장했다.
어청도 탐조 사흘 동안 모두 63종의 새가 카메라 앞에 섰다. 다양하고 귀한 손님들이 빛을 발한 새들의 영화제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어청도(군산)=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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