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은 들녘이 꽃으로 소란스럽다. 화려함의 유혹을 잠시 떨쳐내고 눈을 들어 돌아보면, 한 해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로 들판이 부산하다. 봄볕을 한껏 받아 야들야들한 새순을 틔운 충남 태안군 냉이밭에서 호미질에 바쁜 할머니들의 수다와 웃음소리가 정겹다. “어디에 넣어 먹을 겨?” “아무 데나 넣어.” “냉이는 무조건 맛있어.”
한데 농촌 들녘에서 마스크와 햇빛가리개로 얼굴을 감싸고 일하는 작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면, 서툰 우리말이나 낯선 외국어로 답을 듣는 일이 잦다. 젊은이들이 떠난 자리를 메운 이주노동자다. 기후온난화로 아열대 작물이 자라는 지역에서 베트남 고깔모자 ‘논라’를 쓴 이주민들이 일하는 풍경은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미국에 이주한 한국인들의 ‘아메리칸드림’을 그린 영화 <미나리>에서처럼, 경기도 김포 미나리 농장에서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타이 노동자들을 만났다. 한국에 온 지 10년째인 파마 포리분(43)은 한 농장에서 9년 넘게 일하고 있다. 동료들도 대부분 타이 출신이다.
어촌의 봄도 다르지 않다. 서해안 개펄에선 튼실하게 살이 오른 굴과 바지락의 채취가 한창이다. 어린 물고기를 키우는 치어양식장에선 산소발생기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봄이 온 들녘에선 오만 가지 생명이 자란다. 그 가짓수만큼이나 다양한 일을 여러 문화권 사람들이 해내고 있다. 이들의 꿈도 새 생명과 어우러져 함께 자라고 있다.
김포·태안·신안=사진·글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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