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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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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의 귀재도 버려야 했던 둥지

경기도 화성 화옹호 간척지에 있는 호사도요 둥지 주변 훼손돼
등록 2019-07-27 17:14 수정 2020-05-03 07:17
호사도요의 가장 큰 특징은 ‘빼어난 은신술'이다. 재빨리 움직이지 않지만 사람 시야에서 사라지기 일쑤다. 수컷 호사도요가 둥지 뒤에서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둥지로 올라가려 하고 있다.

호사도요의 가장 큰 특징은 ‘빼어난 은신술'이다. 재빨리 움직이지 않지만 사람 시야에서 사라지기 일쑤다. 수컷 호사도요가 둥지 뒤에서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둥지로 올라가려 하고 있다.

자연에서는 드물게 ‘일처다부제’ 습성이 있는 호사도요(천연기념물 제449호)가 7월 초까지 경기도 화성 화옹호 간척지에서 번식을 시도했지만 아쉽게 실패했다. 호사도요는 화려한 깃털을 가진 암컷이 구애 활동을 한다.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일은 오롯이 수컷 몫이다. 암컷은 또 다른 수컷에게 구애하고 산란을 반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사도요 둥지가 발견된 곳은 지난봄 장다리물떼새 집단 번식이 확인된 뒤 한국농어촌공사 화안사업단(단장 전창운)이 올해 농사를 포기한 1천여 평 논이다. 지난봄 장다리물떼새 60여 마리가 날아와 둥지 17개를 지어 번식했다. 같은 논에 붉은발도요와 쇠물닭에 이어 호사도요까지 날아들어 희귀 야생 조류의 공동 번식지가 된 셈이다. 이 지역에서 논을 빌려 농사짓던 농민들도 농사짓지 않는 논에 물을 잘 조절해, 가물던 봄부터 장마철까지 둥지가 피해를 입지 않게 도와줬다.

‘습지의 은신 귀재’로 알려진 호사도요는 번식과 행동을 관찰하는 일이 까다롭고 힘든 편이다. 소리에 민감한 새는 주변에서 수상한 소리가 나면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숨어 있기 일쑤다. 또 알을 품은 수컷은 주변 수풀과 비슷한 보호색을 띠어 가까운 거리에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6월18일 처음 둥지를 발견한 한국물새네트워크 정기탐조팀은 같은 논에서 둥지를 추가로 발견해 관찰 중이었다. 두 둥지의 알 8개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기를 기대했지만, 7월9일 둥지에서 알을 품던 수컷을 본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알과 어미새는 모두 사라졌다.

봄부터 이 지역 야생 조류의 생태를 조사하던 한국물새네트워크 한종현 총무이사는 “어미새가 주변 요인 때문에 번식을 포기하자 다른 조류나 야생동물이 둥지와 알을 훼손했다”고 밝혔다. 둥지에 알 잔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개입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사진 찍던 사람들이 둥지 주변 풀을 없애 둥지가 노출됐고,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수컷이 결국 둥지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날개를 펼쳐 보이는 등 과시 행위를 하는 암컷 호사도요. 같은 논에서 암컷 세 마리가 발견됐다.

화려한 날개를 펼쳐 보이는 등 과시 행위를 하는 암컷 호사도요. 같은 논에서 암컷 세 마리가 발견됐다.

번식에 성공한 장다리물떼새가 어린 새를 데리고 먹이를 찾고 있다.

번식에 성공한 장다리물떼새가 어린 새를 데리고 먹이를 찾고 있다.

번식을 마치고 주변 논으로 이동한 붉은발도요 가족.

번식을 마치고 주변 논으로 이동한 붉은발도요 가족.

사람이 농사를 포기한 뒤, 논 1천여 평은 야생 조류의 공동 번식지가 됐다.

사람이 농사를 포기한 뒤, 논 1천여 평은 야생 조류의 공동 번식지가 됐다.

화성=사진·글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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