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길목 3월 초순, 유럽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튤립과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건물 앞에 사람들이 우산도 없이 비바람을 맞으며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건물은 로 널리 알려진 안네 프랑크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을 피해 숨어 살던 집이었다. 1942년 열세 살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장을 ‘키티’라 부르며 깊은 감수성으로 채워간 소녀의 일기는, 나치 독일의 집단학살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끌려가기까지 2년 동안 쓰였다.
안네 프랑크의 집 바로 옆 교회 종탑에선 15분마다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두려움에 떨던 안네에게 위안이 되었을까? 집 앞 수로에선 오리들이 날갯짓으로 새벽을 깨웠다. 안네는 “달빛이 너무 밝은 저녁, 사람들에게 발각될까 창문을 열지도 못했다”고 일기에 적었다.
1944년 8월4일, 안네는 761일을 지낸 암스테르담 은신처에서 나치스 당원들에게 잡혔다. 그리고 150만 명이 가스실에서 죽어간 폴란드의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로 가족과 함께 끌려갔다. 엄마 에디트는 그곳에서 죽고, 안네와 언니 마르코트는 독일 하노버 시골마을 첼레의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로 다시 보내졌다. 안네는 종전을 두 달여 앞둔 1945년 3월께 수용소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르겐벨젤 수용소의 드넓은 터엔 남아 있는 시설이 거의 없다. 단지 1천여 명씩 묻힌 거대한 무덤 수십 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안네의 주검도 그 무덤 속 수많은 억울한 주검들과 엉켜 있다.
참혹하고 비통한 ‘고통의 역사’는 아는 데 그치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나치가 저지른 대량학살뿐 아니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제주4·3 학살 등 이 땅에서 벌어진 집단학살과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진 제노사이드(특정 집단을 대량학살해 절멸시키려는 행위)를 우리는 또렷이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나와 우리의 후손이 또 그렇게 죽어갈 가능성을 낮추는 길일 거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기념비에는 “아우슈비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류가 그 사실을 잊는 것이다. 그러면 홀로코스트가 다시 일어나고 말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소설 으로 직접 겪은 제주4·3의 참상을 증언한 작가 현기영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4·3보다 더 무서운 것은 4·3을 국민이 잊는 것”이라고 했다.
안네가 고통 속에 숨져간 3월, 곧 다가올 제주4·3을 앞두고 안네와 그 가족들이 거쳐간 학살의 경로와 흔적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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