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이미 해방된 이라크 티그리스강 동쪽 모술에 위치한 알아티르 소아 전문 종합병원은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이가 누구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슬람국가(ISIS)가 싸움에 지고 물러나면서 버리고 간 시설을 적군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병원 전체를 불태워버렸다. 이후 병원에 딸린 응급실만이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됐다.
응급조치와 병실 구실을 동시에 수행하던 30여 평 공간은 쉴 새 없이 아이들을 안고 들어서는 부모와 끊임없이 울어대는 아이로 혼잡 그 자체였다. 고통을 견디는 아이들과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부모들의 무기력함을 지켜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교전이 이어지던 몇 달 전엔 치료받기 위해 밖으로 나서는 행위 자체가 목숨 건 모험이었다.
4월 말 이라크 특수 정예부대 ERD(Emergency Response Division)와 함께 모술 서쪽 최전선을 며칠 둘러봤다. 적군의 자살폭탄 차량과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를 저격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집 사이를 재빠르게 오가야 했다. 끊임없이 들리는 크고 작은 폭발음으로 인해 우리와 ISIS 사이에 빈 공간만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늘에선 이라크군의 전진을 돕기 위해 이따금 폭격기가 공습했다. 그때마다 저만치 ISIS 점령지에선 수백m의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마침내 ISIS는 퇴각했다.
전투가 끝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불과 20∼30분 전까지 총과 바주카포로 공격을 쏟아붓던 바로 그 거리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수백 명이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쏟아져나왔다. 그들이 ISIS와 이라크군의 교전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이라크군의 폭격을 고스란히 받아낸 피란민의 상당수는 10살 미만 어린아이였다.
요란한 폭발음에 놀라거나 자기 손을 이끌던 부모나 어른들이 우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우는 아이들은 차라리 괜찮았다. 가슴을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는 아픔이 느껴지는 순간은, 이 모든 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듯 체념한 아이들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다. 탈출 중에 ISIS 저격수의 공격을 받아 머리에 피를 흘리는 아이, 폭격으로 이탈한 턱관절을 붕대로 겨우 지지하는 아이, ISIS가 납치한 부모를 찾아달라고 작은 손으로 ERD 요원의 손가락을 붙든 채 울먹이는 아이…. 이들이 겪은 일은 훗날 어떤 형태로 그들의 마음에 남을까.
황급한 대피 상황에서 애써 작은 인형 하나를 들고 나온 아이를 본다. 그 작은 인형이 오랜 내전으로 시달리는 이라크와 시리아 땅에 평화를 가져다주길 기원한다. 맏이뻘인 10살 남짓한 아이들은 커다란 짐을 지고 나오며 뒤에 처진 가족들을 챙기느라 연신 소리를 질렀다. 이들은 아마 지하 대피실 안에서 며칠 밤을 새우며 공습이 자신의 집을 향하지 않도록 기도했을 것이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이 모든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설사 우리가 ISIS를 시리아와 이라크 땅에서 격퇴하더라도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의 고통 앞에서 모두 죄인이지만 우린 그 사실을 짐짓 외면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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