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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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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걸 다 하누만

등록 2025-11-06 22:27 수정 2025-11-11 18:10
너라고 불러도 될까. 사진 속 너는 원숭이지만 신이라 숭배되고, 나는 겨우 사람일 뿐이니. 그러므로 ‘님’이라 불러야 할까. 너희는 마치 거울처럼 사람에게 다가온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고사성어 ‘목후이관’은 목욕시킨 원숭이에게 갓을 씌웠다는 뜻인데, 그야말로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2017년 싱가포르 힌두교 사원.

너라고 불러도 될까. 사진 속 너는 원숭이지만 신이라 숭배되고, 나는 겨우 사람일 뿐이니. 그러므로 ‘님’이라 불러야 할까. 너희는 마치 거울처럼 사람에게 다가온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고사성어 ‘목후이관’은 목욕시킨 원숭이에게 갓을 씌웠다는 뜻인데, 그야말로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2017년 싱가포르 힌두교 사원.


가만히 원숭이를 보고 있자면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원숭이는 인간이 거울처럼 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들이 우리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물끄러미 한참을 들여다보면 그와 내가 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묻게 된다. 원숭이와 인간은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닮아도 너무 닮았다.

원숭이는 우리나라에 살지 않는데도 오래전부터 친숙한 동물이었다. 단순 계산으로 우리나라 사람 열두 명 중 한 명은 원숭이띠를 부여받고 이 땅에 태어났다. 원숭이와 관련된 속담과 사자성어는 얼마나 많은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를 시작으로 ‘잔나비 밥 짓듯’ ‘원숭이 이 잡아먹듯’ 등의 속담이 있고, ‘조삼모사’와 ‘견원지간’ ‘목후이관’ 등 사자성어도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진다. 원숭이는 어리석은 인간, 재빠르고 재주 많은 인간, 그러나 언제든 인간을 짓밟을 수 있는 ‘인간을 닮은 존재’의 대명사다. 책과 영화로 사랑받은 ‘서유기’와 ‘날아라 슈퍼보드’, ‘혹성탈출’ 모두에 그런 원숭이들이 우습거나 무섭게 등장한다.

힌두교에는 신이 무려 3억3천만 종(신에게 ‘종’이라 써야 할지, ‘명’이라 써야 할지, ‘분’이라 써야 할지 헷갈린다)이나 된다고 한다. 그 많은 신에게도 근간이 되는 신이 있으니 브라흐마, 시바, 비슈누다. 사람의 모습이나 보통사람의 모습은 아니다. 머리가 넷(브라흐마)이고, 팔이 넷(비슈누)이거나, 눈이 셋(시바)이니까. 동물의 모습을 한 신도 수두룩하다. 가장 인기 많은 신이 사람 몸에 코끼리 머리를 얹은 ‘가네샤’다.

원숭이 얼굴을 가진 ‘하누만’도 빼놓을 수 없다. 하누만은 고대인도의 중요한 서사시에 거듭 등장한다. 신화에 따르면 어릴 적 하누만은 붉게 물든 태양을 과일로 착각하고 그걸 따먹으려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초자연적 힘을 얻는다. 커서 원숭이군대의 우두머리가 된다. 비슈누의 화신 ‘라마’가 악마와 전쟁을 벌일 때 혁혁한 공을 세워 큰 선물을 받지만 그것을 내던져버린다. 화가 난 신하들 앞에서 하누만은 자신의 가슴을 찢어 그 안에 라마와 그의 아내 시타가 있음을 증명한다. 힌두교에서 하누만은 변함없는 헌신, 체력과 인내, 용맹과 자제력, 명상의 수호신으로 묘사된다. 하누만을 모신 수많은 사원이 있다. 인도를 넘어 동아시아의 많은 종교 경전과 사원에도 각양각색의 하누만이 등장한다. 다양한 형상이 있지만, 자신의 가슴을 찢어 주군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는 형상이 인상적이다. 어리석은 인간의 대변자로 놀림받던 원숭이가 때와 장소가 달라지니 헌신과 용맹과 명상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다.

요가에 ‘하누만아사나’라는 자세가 있다. 하누만 자세라는 뜻이다. 다리를 앞뒤로 완전히 찢고 두 손 모아 기도하거나 두 팔을 하늘로 뻗는, 고난도의 유연함이 필요한 동작이다. 하누만이 도약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 자세는 그냥 사진만 봐도 다리가 아니라 심장이 찢어지는 느낌을 준다. 누군가 “원숭이도 사람도 별걸 다 하누만”이라고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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