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쉽구나, 너의 붉디붉어 황홀한 깃털 옷을 이 사진으로는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를 보는 순간, 곧바로 노래 한 곡이 떠올랐지. 보일 듯이 보이지 않고,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너희를 그린 우리 옛 노래. 겨울철새인 ‘우리 따오기’와 달리 홍따오기 너는 열대우림에 산다지. 2008년 독일 함부르크 하겐베크 동물원.
코흘리개 시절 반 친구 가운데 노래를 빼어나게 잘하는 녀석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선생님이 노래를 시키면 빼는 법이 없었다. 아무 노래나 부르는 것도 아니었다. 진지함과 품위가 느껴지는 노래랄까. 이를테면 가곡 비슷한 노래를 불렀다. 처음 듣는 노래가 많았다. 수십 년이 흐르면서 그 친구의 이름은 머릿속에서 증발했지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도록 온 힘을 다해 노래하던 모습과 노래 몇 곡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녀석의 애창곡은 ‘메기의 추억’과 ‘따오기’였다. 특히 따오기를 부를 때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감동하기는커녕 ‘저 녀석 연기하고 자빠졌다’고 속으로 비웃었다. 하지만 그 진지한 순간에 대놓고 떠드는 놈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그저 멍~ 할 뿐이었다. 녀석은 모범생이었으므로 내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지만, 이따금 옛 동무들을 떠올릴 때면 궁금하다. 뭘 하면서 살고 있을지, 노래 솜씨는 여전한지.
따오기는 흔한 새였다. 19세기 말 한국을 방문한 영국 외교관 찰스 캠벨에 따르면, 겨울철에 흔히 발견되며 행동이 둔하고 의심이 적어 쉽게 사냥할 수 있는 새였다. 1925년 아동문학가 한정동이 ‘당옥이’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때만 해도 따오기는 남북 모두에서 두루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새였다. 같은 해 윤극영이 곡을 붙여 동요 ‘두룸이’를 발표했다. 노랫말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두루미가 왜 따오기를 제치고 제목으로 둔갑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제목은 오래지 않아 ‘따오기’로 돌아왔다. 열다섯 살에 여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프고 “처량한 소리”를 대변했다. “보일 듯이 보이지 않고/…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식민지의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고 생각했을까, 금지곡이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따오기는 급격히 수가 줄어들었다. 1979년 1월 비무장지대 인근에서 관측된 것을 끝으로 더는 볼 수 없었다. 흔했던 새가 노래로만 남은 새가 된 것이다.
그랬으나, 2008년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기증한 한 쌍과 2013년 시진핑 주석이 기증한 수컷 두 마리를 씨앗 삼아 경남 창녕 우포늪에서 복원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10년 만에 363마리로 늘어나는 성과를 냈다. 지금까지 390여 마리를 자연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정말 따옥, 따옥거린다. 뚜루루 운다고 해서 두루미, 끼럭끼럭 운다고 해서 기러기, 따옥따옥 우니까 따오기. 멀리서 보면 흰색에 가깝지만 가까이 보면 엷은 선홍색 깃털로 몸을 감쌌다. 겨울철새인 ‘우리 따오기’와 달리 아프리카 흑따오기는 발과 얼굴이 새까맣다. 남아메리카 열대우림의 홍따오기는 물감을 뒤집어쓴 듯 선명한 붉은색이다.
조용필이 다시 불렀고, 양희은과 한영애가 이어 불렀으며, 수많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불렀던 노래, 내 추억 속 친구가 촉촉한 눈망울로 불렀던 ‘따오기’는 올해 발표 100년을 맞았다.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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