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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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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 새, 사람

등록 2025-09-11 22:09 수정 2025-09-17 08:02
신부님, 길 위의 신부님. 아흔 살 가까이 되도록 쉬지 않고 걷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날지 못해 걷고 계신가요. 어찌 저어새를 머리에 이고 계십니까. 새의 안위가 공항보다 소중한가요. 저어새처럼 고개 저으시네요. 아니라고, 민간공항이 아니라 군사기지를 확장하는 거라고. 관광미항이 될 거라던 제주 강정포구가 해군기지가 된 것처럼. 누구도 아닌 미군을 위한 군사기지가 된 것처럼. 2025년 새만금 수라갯벌.

신부님, 길 위의 신부님. 아흔 살 가까이 되도록 쉬지 않고 걷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날지 못해 걷고 계신가요. 어찌 저어새를 머리에 이고 계십니까. 새의 안위가 공항보다 소중한가요. 저어새처럼 고개 저으시네요. 아니라고, 민간공항이 아니라 군사기지를 확장하는 거라고. 관광미항이 될 거라던 제주 강정포구가 해군기지가 된 것처럼. 누구도 아닌 미군을 위한 군사기지가 된 것처럼. 2025년 새만금 수라갯벌.


새와 사람이 걷는다.

새는 날고 사람은 걸어야 할 텐데, 새와 사람이 함께 걷는다. 새들이 사람 머리 위에 앉아서 걷는다. 큰뒷부리도요가 맨 앞에 섰다. 저어새와 가창오리, 검은머리물떼새, 황새, 검은머리갈매기, 가마우지, 황조롱이, 알락꼬리마도요, 물수리가 뒤를 따른다. 퉁퉁마디와 흰발농게, 삵과 고라니, 줄장지뱀과 금개구리, 대모잠자리와 백합도 함께 길을 나섰다. 갯벌에서 살아왔고, 갯벌에서 살아가고픈 뭇 생명. 내버려둔다면 얼마든 스스로 살아갈 수 있지만, 사람 손아귀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강인하고 가련한 존재들.

전북 군산 수라갯벌에서 서울행정법원까지, 200㎞ 머나먼 길을 걸었다.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기상관측 신기록을 갈아치운 무더위라 했던가, 걷는 내내 뙤약볕, 고단하고 땀내 나는 행진이었다. 하지만 큰뒷부리도요는 피식 웃었을지 모른다. 뉴질랜드에서 출발해 쉼 없이 8일을 날아 새만금에 닿고서야 기력을 보충하고 번식지 알래스카까지 1만7천㎞를 날아가는 하늘의 마라토너가 아닌가. 200㎞쯤이야 식은 죽 아니 떨어진 모이 먹기였을 테니.

아흔을 바라보는 문정현 원로 신부는 지팡이 든 손을 휘저으며 외쳤다. 울음이었을지 모른다. 새가 울 듯이.

“여기 수라갯벌은 새만금이 폭력적으로 난개발되는 가운데, 아직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갯벌입니다. 흰발농게가 기어다니고, 도요새들이 무리 지어 먹이를 찾는 생명의 터전이다, 그 말입니다. 여기에 시멘트를 부어 공항을 짓겠다고요? 이미 공항이 있는데 더 크게 확장하겠다고요? 왜 그럴까요. 누가 가장 원하는 걸까요. 미군입니다. 군산공항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 공군기지나 마찬가지였고, 미국은 언제나 더 큰 군사기지를 원했어요. 말로는 새만금 신공항이라지만, 제주 강정마을이 어땠습니까. 크루즈 관광미항 짓겠다고 떠벌려놓고는 결국 해군기지 지은 거잖아요. 미군 맘대로 통제할 수 있는 전쟁기지 세운 거잖아요. 내가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할 때도 피눈물을 흘렸어요. 여기 갯벌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 갯벌을 터전으로 삶을 일구던 주민들 죄다 내쫓고 또 전쟁기지 짓겠다는 것 아닙니까. 바다 건너 코앞에 라이벌 중국이 있잖아요. 여기가 요충지라고 하네요. 갯벌 갈아엎고 군사기지 짓는 것 우두커니 바라만 봐야 합니까. 그 꼴은 차마 못 보겠어요. 나, 늙었지만 서울까지 걸어갈 겁니다. 행정법원에서 취소판결 내리라고 목청껏 외칠 겁니다!”

늙은 신부의 머리에 커다란 저어새가 앉아 있었다. 어느 날은 황조롱이였고, 다른 날은 검은머리갈매기였다. 새를 머리에 이고 서울로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멋진 슬픔이었다. 슬픈 멋짐이었을까.

‘새, 사람 행진단’이 무더위를 뚫고 서울로 걷는 와중에도 수라갯벌 하늘 위엔 새와 전투기가 아랑곳 않고 날아다녔다. 물 고인 갯벌에서 주걱 같은 부리를 휘저으며 먹이를 찾는 저어새를 보다가 슬며시 눈을 들어 미군기지로 착륙하는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F-35를 바라보는 기분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날 수 없을지라도, 새가 될 수 없을지라도, 새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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