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심코 길을 걷다가 얼굴을 덮친 끈적하고 얇은 장막에 깜짝 놀랐지. 무당거미 너였어. 눈에 띄는 선명한 무늬와 색깔이 무당의 화려한 옷과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 너뿐이겠니. 무당벌레, 무당개구리, 무당노린재, 무당부전나비도 있지. 국정을 무당굿판으로 여기고 칼춤을 추다가 사로잡힌, 거미아재도 있고. 2017년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
프랑스 태생의 미국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는 1911년 태어나 2010년에 죽었다. 한국식 나이계산법으로는 100살, 서양식으로는 99살을 살다 떠났다. 3·1만세운동 때 이미 아홉 살이었는데, 서울 용산 참사가 벌어질 때까지도 ‘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칠순을 넘긴 할머니가 되고서야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여든여덟 살에 ‘마망’(Maman)을 발표했고, 같은 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대표작 ‘마망’은 프랑스어로 엄마를 뜻한다. 이 작품을 상상하기 위해 배우 김혜자나 윤여정을 닮은 프랑스 어머니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외계 생명체의 지구 침략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거대 괴물을 떠올리는 게 오히려 나을 테니까. 엄마는 높이 9m, 너비 10m에 이르는 거대한 강철 거미다.
루이즈 부르주아에게 엄마는 거미였다. “엄마는 실을 짜고 수선하는 직조공이었다. 거미처럼 지혜롭게 새끼들을 보호했다.” 청동으로 만든 몸통 아래엔 알주머니가 달려 있고, 그 안에 대리석으로 만든 스물여섯 개의 알이 들어 있다.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일찍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거대한 거미를 만들었다.
거미는 최초의 육지동물 가운데 하나다. 한때 ‘날개 없는 곤충’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곤충과는 독립된 거미강으로 분류된다. 알려진 것만 4만여 종인데, 알려지지 않은 것도 4만여 종에 이르리라 짐작된다. 대단히 영리하고 솜씨 좋은 사냥꾼이다. 거미가 한 해 지구에서 먹어치우는 곤충의 무게가 지구에 사는 사람의 무게와 맞먹을 정도라니, 거미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풍경은 무척이나 달라질 뻔했다.
거미줄은 가볍고 질기고 탱탱하다. 지구 한 바퀴를 돌 길이의 거미줄 무게가 비누 한 장 정도다.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다섯 배 질기고, 인류 최고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나일론보다 서른 배나 신축성이 뛰어나다. 거미들 가운데 절반 정도만 거미줄을 친다. 어떤 녀석은 거미줄을 투망처럼 던져 먹이를 잡고, 어떤 녀석은 거미줄을 바람에 날려 그걸 타고 멀리 이동한다.
어디에나 있다, 마치 엄마처럼. 염낭거미와 벨벳거미의 모성애는 지나칠 정도여서 자식을 품어 키우는 것도 모자라 제 몸을 먹이로 내어준다. 성찬을 즐긴 뒤에야 새끼들은 엄마의 사라짐을 알고 제 살길을 찾아 나선다.
거미는 먹이를 씹어 먹지 않고 녹여 먹는다. 사로잡은 먹이에 단백질분해효소가 담긴 소화액을 주입해 녹인 뒤 빨아 먹는 것이다. 무당거미의 단백질분해효소 추출물을 이용한 화장품과 다이어트 식품, 사료도 있다.
2023년 최악의 국가행사로 기록된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때 윤석열이 주위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장면이 보도됐는데, 불룩한 몸통에 비해 앙상한 팔다리가 도드라진 탓에 ‘거미형 체형’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각종 성인병에 시달릴 위험이 큰 체형이다. 술과 안주를 멀리하고,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불평은커녕 고마워해도 모자랄 판이다. 지금 그에게 감옥이라는 거미줄은 국가가 제공하는 치료의 요람이 아닌가.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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