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의 줄무늬가 사자와 같은 포식자의 시선을 어지럽히는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라는 설은 그럴듯해. 하지만 선명한 무늬 탓에 오히려 눈에 띈다는 지적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 사람은 참 아는 게 없단다. 모습대로라면 ‘줄무늬말’이어야 하는데, 얼룩이라서 더 좋은 너희의 이름. 2010년 서울어린이대공원.
불가마 찜질방이 따로 없다. 밖에서 일하면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마을 방송에선 한낮에 밭일하지 말라는 경고가 하루에도 대여섯 차례 흘러나온다. 외출하지 않거나 연락이 뜸해진 노인들은 없는지 주의 깊게 살펴달라는 요청과 함께.
보름가량 집을 비운 사이 밀림처럼 우거진 밭을 그냥 둘 수 없어 미친 듯이 낫질하다가 지나는 어르신들한테 여러 번 꾸중을 들었다. “와(왜) 땡볕에서 큰일 날 짓을 하노. 그카다(그러다) 쓰러진데이. 퍼뜩 들어가시게. 사람 목심(목숨) 생각맨치 질기지 않은 기라.”
땀을 한 바가지 쏟고 들어와 샤워하니 찬물에서 뜨뜻한 물이 나온다. 마을로 들어오는 상수도 배관이 아스팔트 바로 아래 묻혀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
역대급 폭염이란다. 기상캐스터의 안타까운 얼굴 뒤로 붉게 타오르는 한반도 폭염 지도가 펼쳐진다. 1994년과 2018년, 2024년의 찜통 신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란다.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 쓰라는 당부가 끝나자 해괴망측한 뉴스가 따라붙었다. 이자들을 대체 뭐라 불러야 하나. 무더위 보양식에 환장한 사람들?
어느 더위 먹은 양궁 동호인들이 살상력을 높게 개조한 화살로 농민들이 방목해 키우던 흑염소를 쏘아 죽이고 나눠 먹다가 붙잡혔다는 게 아닌가. 열한 명이 열네 마리를. 여름 보양식의 대명사이던 개고기가 금지되면서 흑염소 가격이 뛰었단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그런 짓을.
그들의 몰염치한 ‘흑염치’를 탓하다가 문득 흑염소 도축 장면을 보았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충격이었다. 흑염소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까만 털을 벗기고 나자 드러난 눈부시게 하얀 살결이.
훗날 하얀 북극곰의 맨살이 까만색임을 알게 됐을 때도 그 기억은 불현듯 되살아났다. 장면은 현상이자, 은유다. 자연은 보여주는 만큼 속내를 가린다. 많이 보아도 깊게 본 것은 아니다.
흰 털과 검은 털이 질서 정연한 듯 무질서하게 몸을 감싼 얼룩말은 어떨까. 그의 얼룩은 흰 바탕의 검은 무늬인가, 검은 바탕의 흰 무늬인가. 답이 있다는데, 내겐 관점의 문제로 보인다. 털만 생각한다면 흰 털 배경에 검은 줄이 그어져 있다는 주장이 그럴싸하다. 하지만 맨살이야말로 바탕색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어쩌면 얼룩말은 혼란을 주러 온 사자가 아닐까. 까불지 말라는 경고를 검은 맨몸의 ‘안’과 줄무늬 털의 ‘겉’에 담아 날려 보내는 게 아닐까.(알베르 카뮈처럼)
말과 당나귀의 친척인데도, 사람은 얼룩말을 길들이지 못했다. 다행이다. 얼룩말에게, 오히려 사람에게.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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