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강에 ㅅ을 씻고

전라남도 신안의 섬들을 어슬렁거리다가 너를 잡던 최문갑 형님을 만났지. “어떻게? 삼마이 그물로 잡지라. 썰물 때 갯강에 드리워놓으면 밀물 때 숭어가 쓰윽 밀려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그물에 걸리는 거요.” 한낮의 갯가에서 숭어 씻는 아재를 보며 어쩌다 정희성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가 떠오른 것인지. 2023년 봄 팔금도.

생선 요리를 그저 받아먹기만 했던 멋모르던 시절엔 송어와 숭어를 구별할 줄도 몰랐다. 고등어와 오징어를 나눌 줄은 알았지만, 송어와 숭어는 이름이 비슷한데다 자주 밥상에 오르는 녀석들도 아니어서 보아도 까먹고 들어도 까먹고 먹어도 까먹곤 했다. 둘의 생김새가 또렷이 다르고, 맛도 다르고, 사는 데가 생판 다르건만 구별점은 뭉개지고 그저 드물게 만나는 생선으로만 생각한 탓이다.

회귀성 물고기인 송어는 숭어보다 연어와 가깝다. 강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가 번식을 위해 강으로 돌아온다. 썰어놓고 보면 살결 무늬가 연어와 닮았는데, 이는 소나무를 잘랐을 때 나뭇결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송어다. 차가운 물을 좋아해서 강원도 깊은 계곡과 바닷가에 산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송어는 토종과 다른 ‘무지개송어’인데, 196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알을 사와 강원도 평창에서 양식을 시작하면서 어획량을 크게 늘렸다.

숭어는 농어의 친척이다. 미끌미끌한 송어의 피부와 달리 단단한 은빛 비늘을 갑옷처럼 입고 있다. 세계 거의 모든 곳에 살고, 우리나라에서도 안 잡히는 바닷가가 거의 없다. 바닷물고기지만 민물도 좋아하는 까닭에 한강과 섬진강 하구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역과 크기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가지각색이다. 바닷가에서 놀다보면 물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녀석을 자주 보곤 한다. 포식자로부터 달아나려고, 부족한 산소를 채우려고, 몸에 달라붙은 기생충을 떼어내려고 그런다는 말이 있다. 아무튼 뛰어오른다. 힘차게 뛰어오른다. 엉겁결에 망둥이도 따라 뛸 만큼.

보리알이 여무는 봄이 되면 살이 오르고 맛까지 오르는데, 이를 봄숭어 또는 보리숭어라 부른다. 월북작가 엄흥섭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단편소설 ‘숭어’를 발표했다. 소작농 춘보는 동네가 알아주는 숭어잡이꾼이지만 먹어본 적이 별로 없다. 큰 물고기는 내다팔아야 입에 풀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못된 지주 김참봉의 심술을 달래려 숭어를 바치려 하나 꾸지람만 듣고, 뒤늦게 숨이 넘어가는 숭어를 팔려고 읍으로 향한다. 뙤약볕에서 숭어가 상하기 시작하고, 결국 팔지 못한 숭어를 집에서 요리해 먹는다. 상한 숭어를 먹은 딸아이가 숨이 넘어가고 하얗게 밤을 새워 도움을 구하지만, 몰인정 속에서 딸을 잃는다. 숭어떼가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환각을 느끼며 춘보는 낫자루를 들고 어딘가로 달려간다. 악몽인가, 그 시절 소작농의 현실이었다.

슬프게도 송어와 숭어를 나만 헷갈린 게 아니었다. 슈베르트 가곡 ‘송어’는 오랜 세월 ‘숭어’로 잘못 표기됐다. 교과서마저 2000년대 들어 바로잡혔다니 나만 바보는 아니었던 셈.

바닷가로 옮겨와 살면서 생선 손질을 배웠다. 칼도 마련했다. 이따금 부탁받고 생선을 다듬어준 뒤 삯으로 생선을 받는다. 산 숭어를 스무 마리쯤 손질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알았다. 물 밖으로 나온 숭어가 아가미를 들썩이며 가쁘게 숨을 몰아쉴 때, 배와 아가미 사이에 ‘ㅅ’이 보인다는 걸. 숭어의 시옷일까, 숨의 시옷일까. 칼질을 멈칫했다. 덜컥 겁이 났다.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