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전국을 돌며 유세를 이어가던 집권여당의 대표가 시민들을 모아놓고 흥미로운 말을 했다.
“여러분, 정치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모두 바꿀 수 있기 때문이죠.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인 거지, 정치 자체에는 죄가 없습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정치를 하러 나왔습니다.”
현장에선 환호가 쏟아졌다. 뉴스를 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치에는 죄가 없지. 정치를 돈으로 바꿔 말해도 되겠네. 돈이 무슨 죄겠어. 돈을 개같이 벌고 개같이 쓰는 사람이 문제지, 안 그래?
정치를 법 또는 법기술로 바꿔봐도 말이 매끄러웠다. 법이 무슨 죄인가. 법을 개같이 쓰는 사람이 문제지, 법 자체에는 죄가 없다. 의술은 안 그런가. 의술을 개같이 쓰는 사람이 문제지, 의술 자체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정치도 법도 의술도 그의 말마따나 우리의 “삶을 모두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사람이 문제이기에 죄가 없었다.
하지만 찜찜했다. 정치와 법과 의술에는 정말 죄가 없는가. ‘개 같은 사람’만이 문제란 말인가. 나는 어떤 정치와 법과 의술에는 죄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 같은 정치인을 만든 건 개 같은 정치구조와 정치문화 아닐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양심과 표현을 억압했던 국가보안법 자체에도 죄가 있지, 그 칼을 구부려 휘두른 망나니에게만 죄가 있을까. 의술은 이타적이고 중립적인 기술 자체인가. 용인할 수 없는 의술도 있다.
자신은 기존 정치에 아무런 빚도 없다는 듯 ‘여의도 사투리’를 맹비난하며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부추기던 집권당 대표가 갑자기 정치에 면죄부를 주고, 개 같은 정치인만을 분리 기소하는 모습은 어색하고 괴이해 보였다. 물론 그도 알았을 거다. 둘을 분리할 수 없음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점 앞 바위에 이런 글귀가 새겨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바꿔 말하면 사람은 시스템을 만들고, 시스템은 사람을 만든다. 둘을 분리 기소하는 건 기만과 다름없다.
그나저나 개가 무슨 죄인가. 정치(인)의 더러움을 욕하기 위해 개를 불러와야만 할까. 왜 하필 개일까. 전두환 옹호 발언 뒤 유감을 표명했던 대통령이 이른바 ‘개 사과’ 사진을 내놓을 만큼 대통령 부부의 개 사랑이 각별하기 때문일까. 역사와 시민사회에 미안하게 내놓아야 할 사과가 ‘사과 따위 개나 줘버려’로 바뀌었다면 표현의 경박함 탓일까, 인식의 과도함 탓일까. 개를 빗대는 어떤 비유엔 촌철과 웃음이 가득하지만, 개를 끌어들이는 어떤 비판과 표현은 배설이 되고 만다.
개를 탓하기 전에 거울을 보자.
개도 거울을 볼 줄 안다. 다만 물리적 행위를 넘어 심리적 행위로 자신을 바라보는 건 ‘아직은’ 사람의 몫이 아닌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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