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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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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마이크 2001년의 철로

‘비폭력·불복종 행동’ 전장연 박경석 대표를 따라 올라가본 버스
등록 2023-09-01 21:35 수정 2023-09-08 09:57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2023년 8월28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버스정거장에서 버스에 올라 시민들을 향해 무선마이크로 이야기하자 경찰이 달려들어 마이크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 박 대표의 옷에 ‘지역 사회, 함께 살자’란 글귀가 적혀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2023년 8월28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버스정거장에서 버스에 올라 시민들을 향해 무선마이크로 이야기하자 경찰이 달려들어 마이크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 박 대표의 옷에 ‘지역 사회, 함께 살자’란 글귀가 적혀 있다.

휠체어 장애인이 버스에 타려면 몇 차례 난관을 거쳐야 한다. 먼저 정류장에 선 버스가 계단이 없는 전동경사로를 갖춘 저상버스인지 확인해야 한다. 저상버스가 정거장에 서면 운전기사에게 휠체어 장애인이 탈 것을 알리고, 차도와 인도 사이 턱에 경사로를 설치해야 한다. 버스가 인도에서 떨어져 주차하면 경사로가 인도에 닿지 않아 휠체어가 오를 수 없다. 경사로가 설치돼 버스에 올라도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있어야 한다. 승객이 꽉 들어찼으면 비장애인처럼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이런 난관을 뚫고 2023년 8월28일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주변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에 올랐다. 버스 한 대에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은 석 대 남짓이어서 장애인 여섯 명은 버스 두 대에 나눠 타야 했다. 이들이 이날 힘겹게 버스에 오른 이유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죽이기 마녀사냥’ 중단을 촉구하는 비폭력·불복종 행동을 하기 위해서다. 7월12일 시작한 ‘버스행동’은 이날로 서른세 번째였다.

160번 버스에 오른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차가 출발하자 무선마이크를 들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애인단체를 폭력단체라 규정하고 시민들과 갈라치기하며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박 대표가 운을 떼자, 버스에 따라 탄 경찰들이 순식간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마이크를 쓰면 업무방해라고 주장한 경찰은 마이크를 쥔 박 대표의 손을 양옆에서 붙잡고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목이 졸린 박 대표의 입에선 비명이 터져나왔다.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약칭 교통약자법) 제3조 이동권에 대한 조항이다. 이 법에서 ‘교통약자’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노들장애인야학 소속 장애인들이 2001년 2월6일 서울역 철로에 드러누워 잇따른 장애인 리프트 사고 등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소속 장애인들이 2001년 2월6일 서울역 철로에 드러누워 잇따른 장애인 리프트 사고 등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는 시위가 시민들의 주목을 받은 건 2001년 2월6일 장애인 30여 명이 서울역 승강장 철로에 드러누워 지하철 1호선 전동차를 멈춰 세운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같은 해 1월22일 경기도 시흥시 안산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부부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다 부인이 추락사하는 등 장애인 사고가 잇따르자 교통 당국의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 기습시위에는 노들장애인야학 소속 장애인이 상당수 참여했다.

1994년 노들야학 교사로 장애인운동의 발을 뗀 박경석은 2001년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를, 2006년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꾸려 대표를 맡았다. 박 대표는 2021년 퇴임해 평교사로 돌아올 때까지 24년간 노들야학 교장으로 일했다. 이 기간에 박 대표는 집시법·철도법 위반, 업무방해, 교통방해, 도로교통법 위반, 특수건조물 침입,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서른세 번의 재판을 받아 징역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납부한 벌금도 3천만원이 넘는다.

장애인들이 장애인의 죽음을 멈춰달라며 서울역 철로를 베개 삼아 드러누운 지도 22년이 지났다.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예산 배정과 대화를 요구하는 활동가의 마이크를 뺏으려는 활극이 2023년 8월에도 펼쳐진다. 그 옆에서 한 비장애인이 말했다. “퇴근시간은 좀 피해서 해야 시민들에게 피해가 없지 않나요?” 태어나서 이날 처음 버스를 탔다는 장애인이 답했다. “우리도 버스 타고 퇴근하고 싶습니다.”

2023년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는 일부에 그친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되지 않은 지하철역도 서울에만 20여 곳(2022년 기준)에 이른다. 전동차와 승강장의 틈이 넓어 비장애인의 도움 없이는 휠체어가 오르내릴 수 없는 전철역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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