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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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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07-11-30 00:00 수정 2020-05-03 04:25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한 정치인은 손을 아주 잘 쓴다. 정확하게 말하면 손바닥. 과거 최고위 관료 시절 그는 출입하던 방송사의 보조 카메라맨까지도 마주치면 “아이고, 동생 어디 가?”라며 정감 있게 말을 붙이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면서 꼭 상대의 등을 쓰다듬었다. 몸의 기억은 오래가는 법이다. 그에게 쓰다듬어져본 사람이 많아서일까, 전국에 형님 10만, 동생 5만이라는 그는 이번 대선에도 뛰어들었다. 용돈 바칠 ‘자식뻘’은 3500명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사람이 나이 들어도 손과 입의 감각은 그대로라고 한다. 한 해부학자가 신체 부위를 관장하는 뇌의 비율을 토대로 인체를 다시 그렸더니, 손과 입이 몸통보다 훨씬 큰 기형적인 모습이 됐다고 한다. 맞아. 먹는 것과 먹는 걸 집는 것, 이 두 가지에만 몰두하는 인간은 나를 포함해 내 주변에 널렸다(하지만 자기는 그러면 안 돼. 응?). 하지만 두 기관의 용도는 그것만이 아니다. 젖먹이가 손과 입을 통해 세상을 탐색하듯이, 우리는 손과 입으로 서로를 탐색한다. 손은 얼굴보다 더 솔직하게 내면을 말해주기도 한다. 사회화된 얼굴은 표정관리가 되지만, 손은 무방비일 때가 많다. 손으로는 보고 듣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느끼고 알 수도 있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만지며 살고 있을까?

한 친구는 이혼한 뒤 가슴이 막히다 못해 등까지 아플 지경이었다. 경락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관리사가 “마음 쓸 일이 많았나 봐요. 혈이 뭉쳤네요”라며 적당한 압력으로 등을 쓸어내리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지난 시간들이 스쳐지나갔단다. 전 남편이 제대로 만져주기만 했어도 그렇게 마른 잎처럼 버석거리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치유와 오르가슴을 동시에 경험한 친구는(하도 오래 굶어서 누가 만져도 그랬을 것으로 사료됨) 그 뒤 틈만 나면 그 언니의 손길을 받으러 갔다. 한동안 “그 언니와 결혼해야 했다”며 징징댔다.

나는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간지럼을 타면 대책이 없다. 일단 웃음이 터지면 상대와 스치기만 해도 ‘우케케케’ 숨이 넘어간다. 무릎이나 팔꿈치 같은 전혀 간지럼을 타지 않을 만한 부위도 마찬가지다. 하기 싫어서 잔꾀 부리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간지럼 잘 타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라니깐.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말이다.

내가 나를 간지럼 태울 수는 없다. 남이 만져야 탄다. 예측 불허이기 때문에 긴장과 스릴이 동반되는 쾌감을 낳는 게 아닌가 싶다. 최근 제목에 끌려 읽은 책 (프로네시스 펴냄)에는 간지럼이 성적 흥분과 관련 있다고 나온다. 섹스에 대한 불안이 높은 사람일수록 간지럼을 느끼기까지 시간이 길다고 한다. 방어적인 심리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리하여 ‘건전하게스리’ 연인끼리 혹은 부모자식 간에 ‘간지럼 태우기 놀이’를 적극 제안한다. 태우는 사람이나 타는 사람이나 모두 웃으니까.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울어서 슬프다는 말도 있다. 마음이 동해서 만지는 게 아니라 만지면 마음이 동할 수도 있다. 세월이 스민 상대의 피부를 쓰다듬고 핥다 보면, 이 사람이 한때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사람이라는 게 새삼 떠오를 수 있다. 혹은 지금도 누군가 애타게 갖고 싶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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