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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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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이 하면 진심이다

15 년 롯데 사나이의 은퇴
등록 2014-07-30 14:37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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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경남 양산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한 남자가 사망했다. 부산에서 일본유학원을 운영하던 이학용씨로, 롯데 자이언츠의 유명한 팬이었다. 사직구장 외야석에서는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가발과 중절모를 쓰고 선수들의 이름을 외치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장례를 치르던 3일 동안, 훈련이 끝나면 장례식장으로 달려와 3일 내내 고인의 곁을 지킨 선수가 있었다. 그해 롯데 자이언츠의 주장 조성환이었다. 얼마 뒤 2루수 골든글러브를 받은 조성환은 수상 소감으로 이학용씨를 애도하며 시상식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야구장은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전쟁터가 아니라 선수와 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직장이자 우주였다.

조성환은 혼자 보릿고개를 넘어오듯 야구를 한 사람이다. 무명에서 주전으로 발돋움하자마자 병역 파동으로 전성기 4년을 날려야 했고, 힘겹게 돌아와 눈부시게 부활한 뒤에는 불의의 데드볼에 쓰러져야 했다. 2009년 최병용이 던진 투구에 맞아 광대뼈가 함몰되었고, 다음해 윤석민의 실투에 다시 머리를 맞으면서도 그는 언제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던 두 후배 투수를 먼저 챙겼다. “나는 괜찮다. 야구 하다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열심히 해라.” 그는 롯데의 주장일 뿐만 아니라, 리그의 존경을 받는 선배였다. 15년간 롯데라는 한 팀의 선수였던 그가 39살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여전히 현역 선수로서 매력이 있는 2루수였고 2~3년간은 선수로 뛰며 일정 수준의 대우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야구로 얻을 수 있는 건 돈 말고도 많았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겠다”는 말은 조성환이 하면 진심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전설이 된 선수가 은퇴할 때 하루 계약을 통해 선수의 마지막 공식 경기를 치르게 하는 것이 전통이다. 롯데 구단도 그에게 은퇴 경기를 제안했지만, 조성환은 거부했다. “은퇴 경기를 치른답시고 1군에 등록되면 규정상 10일 동안 1군에서 빠져야 하는 후배가 생긴다. 누군가는 그 10일 동안 인생을 바꿀 기회를 잡을 수도 있는데, 야구를 그만두는 나의 기념식을 위해 후배의 10일을 뺏고 싶지 않다.” 지금껏 누구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이유다. 결국 그는 선수 등록을 하지 않고 간단한 은퇴식을 통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예정이다.

조성환의 등번호 2번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뉴욕 양키스의 전설 데릭 지터의 등번호에서 따왔다. 그 데릭 지터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한다. 조성환이 선수 시절 내내 동경하던 선수였지만, 유니폼을 벗는 순간의 조성환은 데릭 지터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우승 한번 해보지 못했고, 프로야구사에 족적을 남길 만한 뚜렷한 기록도 없지만, 롯데팬들은 더 소중한 것을 조성환에게서 받아왔다. 우리에겐 뉴욕의 캡틴이 써온 전설보다, 부산의 주장 조성환과 함께 만들어온 추억이 더 소중하다.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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