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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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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맥주다

등록 2009-07-29 18:10 수정 2020-05-03 04:25
홋피 병과 홋피와 소주를 섞어 마시는 글라스 세트. 사진 우에다 사치코

홋피 병과 홋피와 소주를 섞어 마시는 글라스 세트. 사진 우에다 사치코

맥주가 맛있는 계절이다. 술은 뭐든 다 좋아하는 편이지만 무더운 여름에 마시는 생맥주는 각별하다. 시원하게 얼린 생맥주잔에 가득 담긴 맥주를 마시면 오장육부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일본의 술자리에선 “일단은 맥주 한 잔”이 의례적인 순서. ‘일단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맥주에 실례되는 일이긴 하지만, 어쩌면 맥주 대량 소비국인 일본을 잘 나타내는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 맥주의 종류는 점점 세분화돼가고 있다. 올해는 ‘제3의 맥주’가 주목받고 있다. 통상 ‘제1의 맥주’는 보리와 맥아를 이용해 만든 정통 맥주, ‘제2의 맥주’는 보리 원료의 사용량을 줄여 만든 혼합 맥주(발포주), ‘제3의 맥주’는 발포주에 다른 음료를 섞어서 만들거나 지정 원료가 아닌 원료를 사용해 다른 제법으로 만든 맥주맛 알코올 음료를 뜻한다.

최근 일본의 맥주업체들은 저마다 맥주의 쓴맛 대신 초콜릿이나 과일향을 첨가한 제3의 맥주를 출시했다. 제3의 맥주는 맥아 함유량이 20% 미만이면서 지정 외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주세법상 ‘양조주’로 분류돼 세금이 발포주보다 저렴하다. 덕분에 제3의 맥주는 가격도 착하다. 그러면서도 제조사 간의 경쟁이 치열해 맛과 질은 매우 높은 편이다.

착한 가격과 감각적인 맛으로 승부하는 제3의 맥주가 있는가 하면 고급 맥주로서의 지위를 확립한 ‘프리미엄 맥주’도 있다. 프리미엄 맥주는 맥주업체들이 자부심을 갖고 엄선된 원료로 만든 고급 맥주다. 효모가 살아 숨쉬는 맥주, 호프 그 자체의 매력인 쓴맛을 살린 맥주, 다이어트 열풍을 반영해 당분을 줄인 맥주 등 개성도 뚜렷하다. 소규모 제조 메이커가 그 지역의 특산 맥주로서 팔기 시작한 ‘지(地)맥주’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또 하나,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홋피’(HOPPY). 홋피는 원래 맥아청량음료로 일본의 대표적인 서민 드링크다. 여기에 소주를 더해서 마시면 맥주풍 드링크 ‘홋피 소주’로 변신한다. 홋피 한 병으로 ‘홋피 소주’ 두세 잔 분량이 나오는데, 소주만을 추가 주문할 때는 ‘나카(中身·나카미, 알맹이) 주세요’라는 은어로 통한다. 도쿄에서도 홋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혹시 술집 메뉴에 홋피가 있으면 꼭 한번 즐겨보시길.

마지막으로 맥주를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장소 추천. 더운 여름, 시원한 맥주를 더욱 맛있게 마시려면 역시 여름만의 묘미인 ‘비어가든’이 제격이다. ‘비어가든’은 주로 빌딩이나 백화점 옥상, 호텔, 야외 레스토랑 등 외부 공간에 차려지는 맥줏집을 뜻한다. 특히 일본에서는 여름의 볼거리인 불꽃놀이를 즐기며 ‘비어가든’에서 맥주를 마시면 환상적이다. 좋아하는 장소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그렇게 도쿄의 여름밤은 깊어간다.

우에다 사치코 프리랜서 미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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