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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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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손맛

등록 2009-08-13 06:11 수정 2020-05-02 19:25

바쁜 ‘월·화·수·목·금’이 지나고 주말이 왔다. 부푼 마음으로 우리 부부가 달려간 곳은 도쿄에 있는 한 한국인 부부의 집. 그 집의 ‘언니’는 내게 결혼 선배이자 ‘워킹 주부’ 선배이고, 남편끼리는 직종이 비슷해 의견 교환을 하는 것은 물론 서로의 노고도 이해하는 사이다. 이 때문에 죽이 잘 맞아 가끔 이렇게 의기투합한다. 각자 10여 년의 ‘도쿄 생활 경력’을 갖고 있지만, 타지 생활이 오래될수록 이런 스스럼없는 만남은 더 소중해진다.

젤라틴에 블루베리와 라즈베리, 생크림을 넣어 굳힌 젤리(왼쪽). ‘언니’가 만든 과일 칵테일 젤리. 사진 김기은

젤라틴에 블루베리와 라즈베리, 생크림을 넣어 굳힌 젤리(왼쪽). ‘언니’가 만든 과일 칵테일 젤리. 사진 김기은

언니는 요리 솜씨가 좋다. 마음도 한가로운 토요일 정오, 한국 식품점에서 깻잎과 상추를 사다가 언니의 특제 제육볶음으로 쌈을 싸서 먹으니 천국이 여기로구나 싶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음식, 감동이었다. 밥 한 그릇씩을 뚝딱 비운 뒤 그동안 쌓인 얘기를 나누던 우리. 잠시 뒤 눈앞에 등장한 알록달록 디저트에 또다시 감동! 평소 웬만한 ‘도쿄 스위츠’ 정보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나의 자부심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디저트는 언니가 직접 만든 ‘수제 스위츠’였다. 그것도 냉장고만으로 집에서 간단히 만든 디저트란다. 언니가 내온 ‘작품’은 물에 젤라틴을 풀어 먹기 좋게 썬 각종 여름 과일들을 넣고 냉장고에 넣어 굳힌 여름 디저트. 말하자면 ‘과일 칵테일 젤리’였다. 투명한 젤리 속에 색색깔의 과일들이 박혀 먹음직스럽고 보기에도 아주 시원하다. 젤라틴이란 젤을 형성하는 동물성 단백질로, 아이스크림, 마시멜로, 수프, 푸딩, 캔디 등에 자주 사용되는 재료다. 젤라틴은 피부에도 좋다고 알려져 젤리는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언니는 빵도 직접 만든다. 언니가 빵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천연 효모 발효빵’ 때문이란다. 천연 효모 발효빵은 일본에서 한창 유행하고 있는 건강빵의 한 종류다. 첨가제나 방부제는 물론 버터와 설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맛도 깊고 소화도 잘되는 게 특징. 언니는 천연 효모빵 교실을 찾아내서는 토요일 아침마다 다니고 있다. 주중에는 일을 하니 토요일 아침에 일찍 눈을 뜨기 괴롭다면서도 꾸준히 다녀 지금은 중급 과정이란다. 바쁜 직장인 주부지만 실용적인 취미를 배우고 일상 속에서 즐겁게 실천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풍요로운 스위츠 천국 도쿄, 백화점과 유명 스위츠 가게들이 즐비하지만 나만의 아이디어와 정성으로 만드는 수제 스위츠에 비할 수 있을까. ‘과일 칵테일 젤리’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 속에서 수제만의 따뜻함과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김기은 회사원

*‘세 여자의 오이시 도쿄’는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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