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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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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사기꾼인가 화폐금융이론의 선구자인가

스코틀랜드 출신 도박꾼이자 금융전문가의 경제실험, ‘미시시피 버블’ 일으킨 존 로 일대기 <거대한 도박>
등록 2023-07-13 22:42 수정 2023-07-19 08:32
1720년 미시시피회사 주식의 광기에 휩싸인 군중을 그린 무명화가의 삽화.

1720년 미시시피회사 주식의 광기에 휩싸인 군중을 그린 무명화가의 삽화.

귀족과 건달, 숙련공과 하녀와 창녀까지 수많은 군중이 존 로의 저택에 발을 들여놓으려 안달하고, 근위병이 이들을 힘겹게 밀쳐냅니다. 미시시피회사의 주식을 사고 싶다는 욕망으로 달려나온 인파입니다. 주가가 석 달 만에 490리브르에서 3500리브르까지 치솟으면서 다들 몸이 달아올랐습니다. 용케 집 안을 뚫고 들어간 귀부인들은 젖가슴을 드러내고 ‘당신 마음에 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어요’라며 존을 유혹합니다. 프랑스의 실질적 통치자 오를레앙 공작은 벌써 큰돈을 벌었고, 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공녀도 투자에 끼려 합니다. 작가 대니얼 디포는 주식을 사기 위해 <로빈슨 크루소> 인세를 들고 존을 찾아나섰습니다. 존의 세례에 참여한 수녀까지 주식을 받기 위해 존과 몸을 섞습니다.

주가 폭등으로 광기에 휩싸인 프랑스

18세기 유럽을 뒤흔든 프랑스 ‘미시시피 버블’의 한 장면입니다. 네덜란드 튤립 마니아, 잉글랜드 남해 버블과 함께 자본주의 초기 3대 금융투기로 꼽힙니다. 튤립 광기보다 덜 알려졌지만 규모와 영향은 훨씬 더 컸고, 남해 버블의 전조 구실을 했습니다.

버블의 주역 존 로는 스코틀랜드 주화감별사이자 조폐청 고문 윌리엄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소설 <거대한 도박>은 외과수술을 받기 위해 병상에 누워 있는 윌리엄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윌리엄은 어린 존에게서 확률에 근거해 위험을 감수할지 피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의사에게 ‘수술 뒤 생존 확률’을 묻습니다. 의사는 ‘생사는 오직 신만이 결정하며, 베르누이 형제가 전파한 통계학은 어리석은 짓이며 확률론은 카드 도박사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페스트만큼 해롭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습니다. 확률과 통계의 신봉자, 희대의 도박사, 위험 계산을 도입한 경제이론가 존의 미래를 예고하는 장면입니다. 먼 훗날 그가 주도한 국립은행과 미시시피회사의 파산은 프랑스 경제에 페스트만큼이나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과연 이 모든 것이 존의 잘못일까요?

어린 존은 아버지가 수술 실패로 사망하자 ‘무의미하지도 사소하지도 않다’(Non obscura nec ima)는 가문의 좌우명을 새긴 산책용 지팡이와 함께 유산 2만5천파운드를 어머니와 반반씩 상속합니다. 숙련노동자 700년 연봉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입니다. 존은 기숙학교에서 수학과 펜싱 재능을 인정받았고 카드게임에서 상대할 이가 없었습니다. 기고만장한 존은 술에 취한 채 ‘17세기의 유클리드’라고 부르는 앙투안 아르노와 카드게임을 하다 하룻밤에 유산을 다 날립니다. 아르노는 ‘엄청난 수학 재능을 잘 이용하지 못한다’며 자신이 쓴 책 <논리 또는 사유의 기술>을 존에게 선물합니다. 존은 이 책을 통해 위대한 수학자 지롤라모 카르다노, 갈릴레오 갈릴레이, 슈발리에 드 메레, 베르누이 형제를 접합니다. 통계학의 기본 원리인 대수의 법칙과 위험률 계산 공식을 흡수하고, 1년 뒤 카드 승부에서 아르노에게 설욕합니다.

금속 주화가 돈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

영국 런던으로 옮긴 존은 커피숍에서 망명 중인 프랑스 수학자 아브라함 드무아브르와 논쟁을 벌입니다. 손실 확률로 위험을 정의하는 문제와 사후 확률에 대한 베이즈의 정리를 거쳐, 귀금속이 부족한 상태에서 화폐를 공급하는 방법에 이르게 됩니다. 존은 ‘토지의 유동화를 이용한 토지 은행 설립’을 제시합니다. <확률의 원리>를 집필한 수학자 드무아브르는 존의 생각을 꿰뚫어보고, ‘신뢰가 가장 중요하며, 존의 아이디어를 실험할 왕이 있느냐가 핵심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존은 잉글랜드 왕 윌리엄 3세를 설득해 자기 뜻을 펴려고 동분서주합니다. 왕에게 다가가기 위해 왕의 정부 베티 빌리어스와 왕의 동성애 상대 ‘멋쟁이’ 윌슨과 만납니다. 존이 두 사람의 갈등에 휩쓸리면서, 윌슨과 블룸스버리 광장에서 법으로 금지된 결투를 합니다. 윌슨은 죽고 존은 감옥에 갇힙니다. 나중에 존의 아내가 된 캐서린과 디포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존은 파리를 거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도착합니다.

존은 <화폐와 무역>을 집필하면서 놀라운 도박 솜씨를 발휘해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화제가 됩니다. 국채와 로토를 혼합한 초유의 방식으로 정부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정부가 재정을 확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2만파운드의 수익을 남겼는데 당시 장관 연봉의 1천 배에 해당하는 거액이었습니다. 존은 ‘중요한 것은 금이 아니라 시스템과 취급 방법, 아이디어’라며 ‘돈을 생산하는 기계를 고안’했다고 자부심을 표합니다. 유럽은 ‘수학 공식에서 화폐를 만들어낸’ 존에게 매혹됩니다.

존은 에든버러로 돌아와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연설합니다. ‘국가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제안’이라는 전단을 커피하우스에 미리 배포하면서 그의 연설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됩니다. 스코틀랜드가 침체하는 동안 네덜란드는 금속 주화가 돈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발전했다고 주장합니다. 국민경제의 능력이 금과 은의 양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종이돈을 보증해주는 것은 금속이 아니라 미래에 기대되는 업적이라고 열변을 토합니다. 하지만 찬반 격론 속에 존이 내놓은 스코틀랜드 국립은행 건설 안은 기각됩니다.

현대 은행의 부분지급준비제를 시행하다
1720년 5월 이후 미시시피회사의 주가는 은행권과 은화 기준으로 모두 빠르게 하락했다. 특히 은화 기준 주가가 더 빠르게 추락한 것은 은화로 환산한 은행권의 가치도 낮아졌음을 보여준다(인플레이션 발생). François Velde(시카고 연방준비은행, 2003)

1720년 5월 이후 미시시피회사의 주가는 은행권과 은화 기준으로 모두 빠르게 하락했다. 특히 은화 기준 주가가 더 빠르게 추락한 것은 은화로 환산한 은행권의 가치도 낮아졌음을 보여준다(인플레이션 발생). François Velde(시카고 연방준비은행, 2003)

존은 프랑스로 건너와 은행을 설립하려 또다시 노력합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프랑스 왕국과 같은 군주제에는 국립은행이 적합하지 않다’라는 은행가 사뮈엘 베르나르의 충고에 따라 존의 제안을 물리칩니다. 존은 루이 14세 사망 뒤 섭정이 된 오를레앙 공작을 설득해 1716년 방크 제네랄을 열었습니다. 형식은 민간은행이었지만 섭정이 100만리브르를 예치해 사실상 섭정의 은행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게다가 은행권 발행과 신용대출이 가능하고, 세금을 은행권으로 납부하게 하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화폐를 발행할 수 있었던 여섯 은행 중 하나입니다. 은행권은 은화로 교환할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존은 확률 계산으로 은은 일부만 보유했습니다. 현대 은행의 부분지급준비제와 유사한 것입니다.

존은 이어서 미국 루이지애나 개발권을 가진 동인도회사를 매입합니다. 방크 제네랄이 방크 로얄로 국유화되면서, 은행권 발행은 국왕(실제로는 섭정) 소관이 됩니다. 1719년 동인도회사와 여러 무역회사가 합병하면서 주가가 폭등해 1만리브르에 이르게 됩니다. 존은 이듬해 1월 재무장관에 취임했고, 방크 로얄과 미시시피회사를 합병했습니다. 존의 적들은 대규모로 은화 교환을 요구하면서 부분지급준비제의 약점을 공격했습니다.

한편 물가는 급등했고 루이지애나 탐사대는 성과 없이 돌아왔습니다. 주가는 결국 5월이 되면서 폭락했고 성난 민심은 폭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재무장관을 그만둔 존은 섭정이 수십억리브르를 몰래 찍은 것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의 원인임을 알게 됩니다. 섭정은 존을 국외에 나가도록 조처하는데, 이는 자신의 은행권 남발이 사람들에게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미시시피 버블이 터진 뒤 여러 차례 조사가 있었습니다. 의회는 무려 800명의 수사관을 투입했습니다. 모든 조사의 결론은 존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미시시피 버블의 책임이 존에게 있는지 아니면 군주에게 있는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무책임하게 은행권을 남발하는 군주제의 속성을 예측하지 못한 존의 잘못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를 앞서는 것? 우스꽝스럽거나 비극적

디포가 ‘시대를 앞서고 있어요’라고 하자, 존은 ‘시대를 앞서는 것은 영예로운 것이 아니에요. 우스꽝스럽고 대개는 비극적이죠’라고 답답함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중앙은행, 종이화폐, 부분지급준비제 등 존의 생각은 현재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가 개척한 위험의 확률적 계산은 은행과 보험에서 널리 쓰입니다. 존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그가 시대를 앞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존 로는 그의 프로젝트를 통해 경제학을 탁월하고 심오하게 발전시켰으며, 역대 최고 화폐이론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했습니다.

클로드 쿠에니의 <거대한 도박>

클로드 쿠에니는 1956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났습니다. 소설 외에 연극, 영화, TV물 대본을 썼고 게임 개발에도 참여했습니다. 젊은 시절 전 유럽을 떠돌며 식당 종업원, 총기 상인, 철도 인부, 법원 서기 등 여러 일을 했고 이것이 작품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대표작 <거대한 도박>은 금융투기의 경제사 또는 존 로의 전기에 가까운 책입니다. 한글판 분량이 500쪽이 넘습니다. 하지만 18세기 프랑스 왕실의 사치와 방탕함, 생시몽, 볼테르, 디포, 아르노, 드무아브르 같은 지식인들의 생각, 데마르테, 노아이유 공작, 아르장송 후작 같은 경제관료들의 행동, 유럽 대도시의 커피하우스와 신문의 유행, 섹스와 폭력 등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중도에 내려놓기 어려운 책입니다. 2006년 독일어로 출판된 뒤 13개 언어로 번역됐고, 국내에는 두행숙의 번역으로 2008년 추수밭에서 출간됐습니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소설로 읽는 경제학: 일반인은 경제현상에 쉽게 다가가고 경제와 금융 종사자는 소설에 매력을 느끼도록 소설 속에서 경제를 발견하는 글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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