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같이 읽을 애덤 해즐릿의 장편소설 <유니언 애틀랜틱>은 21세기 금융 엘리트들의 치열한 삶과 야망 그리고 허영의 생생한 재현이자 금융 질서의 수호성인으로서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은밀한 행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유니언 애틀랜틱 금융 그룹의 사옥은 보스턴시 금융지구에서 가장 높고 가장 돋보이는 건물입니다. 혜성처럼 떠오른 유니언 애틀랜틱은 미국 금융 지배자 중 하나이며, 거대한 사옥은 놀라운 수익률만큼이나 고객과 경쟁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줍니다. 사옥 건설에 대해 그룹 내에 반대가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도가 지나치다는 수군거림도 있었지만 제프리 홀랜드 회장은 밀어붙였습니다. 그는 감동을 주는 이미지가 결국 현실로 실현된다는 논리를 체화한 인물입니다.
은행의 최전선에서 홀랜드의 야망을 현실로 구현하는 주인공은 더그 패닝입니다. 그는 국외사업 본부장에 더해 최근 신설된 특별기획팀장을 겸합니다. 서른 일곱 살의 젊은 간부지만 사실상 그룹의 2인자로 통하며 모두가 경외합니다.
더그의 어머니는 열여섯 살에 미혼모로 더그를 낳았고 심각한 알코올 중독 환자였습니다. 더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낡은 아파트에서 어머니가 술에 절어 무너지는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군에 지원합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특수 작전을 수행 중인 빈센스호가 이란 민항기를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한 현장에 있었습니다. 더그는 분노해서 따지는 현지인에게 ‘다시 이런 상황이 발생해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하며 돌아섭니다.
대부분의 병사는 제대 뒤 방위산업체에 입사해 기술자로 살아갈 생각이지만 더그는 큰물에서 놀겠다는 야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력서를 은행과 증권회사로 보냅니다. 1990년대 중반 평범한 상업은행이었던 유니언 애틀랜틱의 회장 홀랜드는 더그를 자신의 심복으로 발탁하고 공격적으로 보험회사, 증권회사, 자산운용사 인수에 나섭니다. 당시 허용되지 않았던 거래지만 거대 은행들의 로비로 이 규제가 풀릴 것으로 예상했고, 그것이 맞아떨어져 유니언 애틀랜틱은 순식간에 미국 4대 복합금융기관 중 하나로 성장합니다.
상황이 늘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닷컴버블 붕괴와 9·11 공격으로 주가가 폭락하고, 유니언 애틀랜틱이 큰돈을 대출한 에너지 기업 엔론은 분식회계로 파산했습니다. 설상가상 아르헨티나 정부의 디폴트 선언으로 아르헨티나 국채는 휴짓조각이 됩니다. 위기에 처한 홀랜드는 특별기획팀에 간명한 지시를 내립니다. ‘이 상황을 해결해.’ 더그는 회장의 지시가 정상적인 손실 인식과 영업 축소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막 거대 금융기관이 된 유니언 애틀랜틱을 구멍가게 시절로 되돌릴 생각은 야심 찬 회장에게도, 더그에게도 전혀 없었습니다.
더그는 통상적인 은행 이자 수입과 증권회사 수수료만으로는 빠른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유니언 애틀랜틱이 고위험 고수익 투자에 거액을 직접 투자하게 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증권회사는 이 거래의 증거금을 납부할 충분한 자금이 없고, 은행은 고객의 막대한 예금을 갖고 있지만 계열 증권사에 대출하는 것은 규제로 엄격하게 막혀 있습니다. 그렇다고 물러설 더그가 아닙니다. 그는 핀든홀딩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핀든이 은행에서 대출해 증권사에 빌려주도록 합니다. 핀든은 자금이 그저 흘러가는 도관일 뿐입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지만 밀어붙입니다.
더그는 좋은 투자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심복 폴 맥티그가 일본 재무성 고위 관리의 젊은 애인(한국에서 온 호스티스)을 유혹하게 해 비밀 계획을 입수합니다. 일본 정부가 대대적인 주가 부양에 나설 계획을 먼저 파악하고 막대한 자금을 닛케이지수(일본의 대표적 주가지수) 상승에 베팅합니다. 천문학적 수익을 낸 더그는 닛케이가 충분히 올랐다고 판단하고 맥티그에게 발을 빼도록 지시하는데, 운이 좋아서였는지 이후 닛케이는 하락 반전합니다. 인위적 주가 부양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은 일본 정부는 더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 방관해 닛케이는 끝없이 하락합니다.
너무 큰 돈이 실체 없는 핀든에 대출되고 맥티그의 거래가 투명하지 않다는 우려가 은행 내부에 있지만 넘버 투가 추진하고 회장이 묵인하는 투자라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제부의 중간 간부 에벌린은 맥티그의 계좌에 미보고 손실이 3억달러 이상 쌓인 것을 확인하고 회사 감사부에 이메일로 통보합니다. 회사의 커뮤니케이션을 장악한 더그는 이메일을 삭제하게 하고 에벌린을 찾아갑니다. 회계 처리 실수일 뿐이라고 얘기하고 자기가 바로잡을 테니 빠지라고 하면서, 영업부서 임원직을 제안하고 회유합니다. 석연치 않지만 유색인종으로 다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채용돼 한직만 전전하던 에벌린에게 이 제안은 너무 달콤합니다.
더그는 급하게 맥티그에게 연락하지만 그는 휴가를 내고 마카오에서 술에 취해 있습니다. 겨우 연락이 된 맥티그는 ‘더 큰 공을 세우기 위해 더그의 지시에 반해 닛케이 포지션을 청산하지 않았다’고 실토합니다. 그가 은행에서 끌어간 막대한 자금은 고객에게 대출해준 것이 아니라 유니언 애틀랜틱의 닛케이 투자가 펑크 나지 않도록 끝없이 쏟아부었던 것입니다. 3억달러가 넘는 손실은 단순한 기록 착오가 아니라 실체였습니다. 더그는 회장에게 보고하고 홀랜드는 노발대발하지만 둘은 문제를 바로잡지 않고 진실을 은폐하기로 작당합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헨리 그레이브스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미국 중앙은행제도는 반민 반관의 복잡한 조직인데 뉴욕 연준은 그중 핵심 기관입니다. 뉴욕 일원의 은행 감독을 넘어서서, 중앙은행제도와 재무부의 유일한 실제 거래 창구이고, 각국 중앙은행들의 예치금을 보관하는 기관입니다. 매일 1조달러 이상을 주고받는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의 운영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로 뉴욕 연준은 금융기관들의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시스템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최일선 지휘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에벌린은 더그가 제안한 파격적인 승진과 연봉 인상에 흔들리지만 문제를 바로잡기로 하고 뉴욕 연준의 그레이브스를 방문해 은행의 비리를 폭로합니다. 그레이브스는 시스템의 금융 안정, 탐욕스러운 비리 금융인에 대한 처벌 필요성, 불안감을 피하고 싶은 정치권의 압력 사이에서 고뇌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데, 그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실제 연준에서도 인정할 정도입니다. 21세기에 나온 소설 중 가장 치밀하게 금융과 중앙은행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 평가합니다.
저는 오늘 금융 측면을 중심으로 소개했지만 <유니언 애틀랜틱>은 금융소설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금융인 더그의 세속적 허영과 은퇴한 역사 교사 샬롯의 도덕주의의 대결은 두 세계의 단절을 보여줍니다. 또 더그의 비서이자 작가 지망생인 사브리나와 더그의 관계 역시 미묘한 긴장과 재미를 더합니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애덤 해즐릿은 1970년 미국 뉴욕주에서 태어났고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성장했습니다. 스워스모어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아이오와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예일대학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소설을 썼는데 2002년 첫 소설집 <넌 이방인이 아니야>가 퓰리처상과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로 올랐습니다. <유니언 애틀랜틱>은 그의 첫 장편소설로 2010년 미국에서 출판된 뒤 베스트셀러가 됐고, 한국어판은 이듬해 박산호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됐습니다.
*일반인이 경제현상에 쉽게 다가가고 동시에 경제와 금융 종사자가 소설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 속에서 경제를 발견하는 연재입니다. 2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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