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1월6일(현지시각)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오른쪽)와 조 바이든 대통령 후보(왼쪽) 지지자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티시에프(TCF) 센터에 마련된 개표장 밖에서 서로 언쟁을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더글러스 케네디의 소설 ‘원더풀 랜드’는 2045년 미국 미네소타주 트윈시티라고 불리는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입니다. 아, 생각해보니 ‘미국’이라는 단어는 잘못된 표현이네요.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United States)은 2034년 연방(United Republic)과 연맹(United Confederacy)의 두 나라로 쪼개지면서 사라졌습니다. 연방은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를 보였던 서부와 동북부의 주들로 이루어져 있고, 연맹은 공화당 세가 강했던 중서부와 남부의 주들로 구성됐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고 2020년에는 민주당의 조 바이든이 당선되면서 양당 지지자들 사이의 적대감은 크게 증폭됐습니다. 2024년 대선에서 네브래스카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제럴드 콤프만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고 4년 뒤 재선에도 성공했습니다.(이 소설은 집필 시점인 2023년 이전 정치 상황은 역사적 사실에 맞게 구성돼 있고, 이후는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이 기간에 낙태가 전면 금지됐고, 공립학교에서 기독교 수업이 진행됐습니다. 동성 결혼은 위헌 판정이 났으며 독실한 기독교인 이외에는 미국 이민이 불허됐습니다.
설상가상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핵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됐습니다. 미국 부동산 시장은 붕괴했고 실업률은 20%까지 치솟았는데도 2032년 대선에서 콤프만보다 더 강성인 공화당 호킨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호킨스는 전업주부 가정의 세금을 인하하고 ‘일반적이지 않은(즉 LGBT와 이민자) 가정’의 세금을 인상했습니다.
광고
반대 흐름도 있습니다. 2020년대 초반 생체에 이식하는 ‘채드윅 칩’을 개발해 억만장자가 된 모건 채드윅은 테크 사업가입니다. 이 칩을 이식하면 주소록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음악과 영화도 즉시 감상이 가능합니다. 채드윅 칩은 눈앞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기능이 있어서 다양한 분야의 업무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 부작용으로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전세계를 상대로 사업하는 채드윅은 중국 기업과의 협력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자 중재를 자처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뉴딜 정책과 지식인들을 위한 진보주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34년 클리블랜드에서 큐클럭스클랜(KKK)을 추종하는 극우 테러집단 ‘뉴 클랜’이 폭동을 일으키자 채드윅은 현장으로 달려가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해 새로운 연방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흔히들 공화당 지지 레드 스테이트와 민주당 지지 블루 스테이트라고 구분하면서 마치 각각의 주가 단일한 정치적 입장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람 사는 사회가 어디 그렇겠습니까? 블루 스테이트에도 강성 공화당 지지자가 있고, 레드 스테이트에도 공화당을 극혐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공화당 지지와 민주당 지지가 팽팽해서 선거 때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스윙 스테이트도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는 주민투표를 통해 연방을 선택했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러스트벨트 주민들은 연맹을 선택한 웨스트버지니아나 인디애나로 이주했습니다. 반대로 텍사스나 내슈빌 같은 남부 대도시의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은 연방을 선택한 주로 떠났습니다. 연방과 연맹 지지가 팽팽했던 미네소타는 주민투표를 통해 주를 두 개로 분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분리선을 두고 연방과 연맹은 서로 다투다가 트윈시티를 중립지대로 하고 반씩 나누기로 했습니다. 냉전시대 동서로 나뉜 독일 베를린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터전을 잃었습니다.
광고
연방 정보국의 베테랑 요원 샘 스텐글은 중립지대에서 연맹 경찰국에 납치된 막심 레프코비츠가 공개 화형에 처해지는 것을 티브이(TV)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클럽 코미디언 막심은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하는데 민감한 주제를 거침없이 표현해 인기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연맹 쪽에서는 막심이 신성모독을 범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를 처단하기로 한 것입니다. 연맹은 분리 후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최고종교회의에 해당하는 12 사도가 국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공화정에서 신정으로 회귀한 것입니다.
샘 스텐글은 교류 범위가 넓은 막심을 정보원으로 여러 차례 활용한 적이 있어 이번 화형은 충격이 큽니다. 샘의 상사인 브레이머 부장은 트윈시티로 가서 막심의 납치를 지휘한 연맹 경찰국 비밀요원 케이틀린을 암살하라고 명령합니다. 반대로 연맹 쪽에서는 케이틀린에게 샘을 죽이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알려줍니다. 이제부터 둘은 서로를 겨누고 죽느냐 죽이느냐의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케이틀린이 샘의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입니다.
작가 케네디는 한 인터뷰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것이 소설가에게 좋은 훈련을 제공한다. 내가 소설을 집필할 때 하는 일의 대부분은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면 인간의 어리석음이 어떻게 끝없이 반복되는지 알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원더풀 랜드’는 두 자매 요원의 대립을 축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스릴러 과학소설이지만, 동시에 그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찰이 빛을 발한 작품입니다.
작가가 워낙에 서유럽 지향의 반공화당 성향이지만, 그렇다고 시대착오적인 신정으로 회귀한 연맹을 비판하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민주당 성향의 연방은 종교 차별과 성소수자 탄압은 없을지언정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국가처럼 모든 개인을 완벽하게 감시하는 사회입니다. 분리 이후 재선 제한 조항은 없어지고 억만장자 모건 채드윅이 계속 대통령을 맡고 있습니다.
광고
샘과 케이틀린의 아버지는 작가이자 문학 교수였습니다. 그는 코델리아가 아버지 리어왕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는 것으로 연맹이 ‘리어왕’을 개작한 것을 비웃는 만큼, 샘이 연방 정보국 요원으로 들어간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이 나라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파시즘’이라고 비판하면서 ‘내 딸이 카프카의 형사가 됐구나’라고 탄식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인류가 직면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의 모습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더글러스 케네디는?

더글러스 케네디. 위키피디아 갈무리.
더글러스 케네디는 1955년 미국 뉴욕시에서 태어난 작가입니다. 보든칼리지를 졸업한 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잠시 극단 운영과 영화와 라디오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뒤 28살부터는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18권의 소설과 3권의 여행기를 썼습니다. 세계 30여 개국에서 출간돼 총 1400만 권 이상 팔렸습니다. 미국인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 대부분의 삶을 더블린, 런던, 베를린 등 유럽 도시에서 살았고 그의 작품은 특히 유럽에서 사랑받았습니다. 2007년 프랑스 예술문학훈장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르피가로’ 매거진 창간 25주년을 맞아 프랑스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외국 작가로 선정됐습니다. ‘원더풀 랜드’(Flyover)는 영어로 쓰였으나 영어로 출판되지 않은 상태에서 2023년 프랑스에서 ‘Et c'est ainsi que nous vivrons’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판됐습니다. 한국어판은 2024년 조동섭 번역으로 밝은세상에서 나왔습니다.
*소설로 읽는 경제학 : 일반인은 경제현상에 쉽게 다가가고 경제와 금융 종사자는 소설에 매력을 느끼도록 소설 속에서 경제를 발견하는 글입니다. 4주마다 연재.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김건희 관저 퇴거…5분 ‘주먹 불끈’ 쥐며 지지자에 인사
윤석열 금의환향 하듯 퇴거…민주 “상왕노릇 후안무치”
윤석열 온다고…아크로비스타에 봉황 새긴 “수고하셨습니다” 펼침막
‘광명 공사장 붕괴’ 고립 노동자 1명 목소리 확인…“구조장비 접근 어려워”
김건희, 계엄 이후 첫 포착…서초동 사저로 이동
명태균 “윤석열 얘기 도리 아냐”…‘오세훈·홍준표 수사’ 즉답 피해
“이런 사람이 검사 때는 칭송받았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논썰]
‘MKGA’ 빨간 모자 쓴 윤석열…지지자들 “더 잃을 게 없다” 눈물
[속보] ‘광명 신안산선 붕괴 공사장’ 주민 대피령…실종·고립 2명 수색 중
독대는 ‘나’랑…교감은 누구랑?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