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1588년부터 1672년까지 80여 년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정치적으로 합스부르크 황실의 오랜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 공화국을 수립했고, 경제에서는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를 설립하고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세계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칼뱅주의가 국가 종교였지만 여타 프로테스탄트 분파뿐 아니라 가톨릭과 유대교에도 폭넓게 관용을 베풀었다.
전 유럽의 과학자와 철학자가 자유로운 네덜란드로 이주해 학문 발전을 이끌었다. 포르투갈에서 이주한 유대인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와 프랑스 출신 르네 데카르트가 모두 학문의 절정기를 암스테르담에서 보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까지 명성을 날리는 렘브란트 판 레인, 프란스 할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모두 이 시기를 대표하는 미술가다. 그리고 이 황금기의 한복판에서 네덜란드는 튤립 투기의 광기에 휩싸인다.
데버라 모가치는 역사소설 <튤립 피버>에서 암스테르담에서 벌어진 사랑과 배신의 음모를 황금기 시대 경제와 무역의 발전, 상인 계층 부상, 미술품의 인기, 튤립 투기 열풍 속에서 그려낸다. 코르넬리스 산드보르트는 자수성가한 무역상으로 60살이 넘은 노인이지만, 그의 아름다운 아내 소피아는 겨우 스물넷이다. 위트레흐트에서 인쇄업을 하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술에 빠져 살다 산더미 같은 빚만 남기고 죽자, 소피아는 부유한 노인과의 결혼을 가난의 탈출구로 삼았다. 어느 날 코르넬리스는 유행에 따라 자신과 아내의 초상화를 의뢰했는데, 젊은 화가 얀 판 로스와 소피아는 처음 만나는 순간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코르넬리스와 얀은 나이와 직업의 차이만큼이나 인생과 사랑, 그리고 튤립에 대한 태도도 판이했다. 늙은 사업가는 아름다운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 못지않게 대를 이어줄 아들을 절실히 원했다. 또 튤립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튤립 투기로 큰돈을 벌었음에도 마음 한구석에 회의감이 있었다. 초상화에 튤립을 포함해달라 요청하면서, ‘아름다운 꽃도 언젠가는 시든다는 점에서 아름다움의 무상함을 상기해주지 않느냐'며 얀에게 묻는다.
젊은 화가의 대답은 단순했다. “그러니 그 아름다움을 손에 넣을 수 있을 때 즐겨야 하는 거겠지요.” 그에게 소피아에 대한 사랑은 욕정과 구분되지 않는 것이었다. 소피아와 얀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불륜을 이어가다 하녀 마리아에게 꼬리가 밟힌다. 이때부터 소피아는 마리아의 옷을 빌려 입고 하녀인 척 외출해 얀의 화실을 방문하다, 마리아의 연인 생선장수 빌럼의 눈에 띈다. 빌럼은 튤립 투기로 큰돈을 벌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마리아가 얀과 바람피운 것으로 오해해 술을 퍼마시다 전 재산을 도둑맞고 낙담해 사라진다.
빌럼의 아이를 밴 마리아는 위기에 몰려 자신을 돕지 않으면 불륜을 폭로하겠다고 소피아를 위협한다. 소피아는 마리아의 임신을 은폐하고 자신이 코르넬리스의 아이를 가졌다고 거짓말한다. 마리아가 아이를 낳으면 자신이 낳은 것처럼 코르넬리스에게 남기고 얀과 함께 동인도회사의 거점인 바타비아(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도망쳐 새출발을 할 생각이다. 이런 엽기적인 행동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얀과 소피아는 본격적으로 튤립 투기에 뛰어든다.
얀은 튤립 거래에 뛰어들어 당시 최고 인기 상품인 ‘셈페르 아우휘스튀스’로 승부를 보려 한다. 그는 이 구근을 훔치려다 실패한 뒤 소피아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넣고 여기저기서 빌린 돈에 자신의 그림까지 얹어 겨우 한 뿌리를 사는 계약을 맺는다.
범죄에 공모한 산부인과 의사는 마리아의 출산을 돕고, 코르넬리스에게는 소피아가 아이를 낳다가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거짓말한다. 이제 얀은 최고급 튤립을 비싼 값에 처분하고 빚을 갚은 뒤 소피아와 바타비아로 떠나는 배에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과 잔금을 받아야 하는 산부인과 의사는 얀이 도망칠 것을 우려해 그를 인질로 잡고 대신 하인 헤리트를 튤립 판매자에게 보낸다. 아둔할 뿐 아니라 책임감도 없는 헤리트는 돌아오는 길에 주인의 신신당부를 무시한 채 술을 퍼마신다. 만취해 그 비싼 튤립의 구근을 양파로 착각하고 껍질을 하나씩 벗겨 안주로 먹어버린다.
결국 소피아와 얀의 계획은 틀어져 소피아는 자신의 망토를 암스테르담의 운하에 떨군 채 조용히 사라진다. 소피아가 낙담해 운하에 뛰어들어 죽었다고 생각한 얀은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며 모래시계와 해골을 먹다 남긴 양파(!)와 함께 그린다. 당시 유행하던 바니타스 양식의 정물화다.
음모를 뒤늦게 알게 된 코르넬리스는 이들을 잡으러 바타비아로 떠나지만 거기에 소피아와 얀은 없다. 이듬해 튤립 시장이 붕괴해 수많은 사람이 비관에 빠지고, 법원은 튤립 계약을 동결한 뒤 진상 조사에 나선다. 수많은 이가 순식간에 알거지가 되고 자살한 사람들의 주검이 운하에 떠오른다. 대중의 어리석음에 교회는 회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여 설교하고, 화가들은 이를 조롱하는 그림을 남긴다.
소설을 읽다보면 독자는 튤립 한 뿌리에 전 재산이 오가는 것에 황당해지고 터무니없는 과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모가치는 기록을 충실히 취재하고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려 노력했다. 특히 스코틀랜드 출신의 저널리스트 찰스 매케이가 1841년 출판한 <대중의 미망과 광기>(필맥 펴냄, 2018년)에 소개된 튤립 투기를 중요하게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매케이에 따르면 1634년 시작된 투기 열풍으로 튤립 가격이 치솟았고, 최고 품종 셈페르 아우휘스튀스는 토지 12에이커(대략 축구장 7개 면적) 가격에 이를 정도였다.
고가의 튤립 운반 심부름을 하던 헤리트가 양파로 오인해 먹어치운 것 역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암스테르담의 부유한 상인에게 소식을 전하러 간 한 선원이 셈페르 아우휘스튀스를 양파로 오인해 무심코 집어가서 청어랑 먹은 사건이 기록돼 있다. 당시 그 가격이 무역선 한 척의 모든 선원 1년 급여에 해당했다니, 맛이야 어떻든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운 안주였음이 틀림없다.
근래 일부 경제학자가 찰스 매케이 유의 튤립 투기 묘사가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저널리스트와 소설가의 묘사가 학자의 논문만큼 엄밀하지 못하고 일부 과장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튤립 투기에 대한 수많은 역사 기록은 인간의 탐욕과 광기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투기에 대한 최고의 역사가인 찰스 킨들버거는 튤립 투기를 10대 금융 거품의 첫 사례로 꼽는다. 현대의 독자는 역사소설 <튤립 피버>를 통해 그 현장에 다가가는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데버라 모가치는 영국 런던 출신으로 스무 편이 넘는 소설과 영화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영국 작가협회 회장을 했고, 영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8년 훈장을 받았다. <튤립 피버>는 그의 첫 역사소설로 1999년 발표돼, 국내에는 2002년 유혜경의 번역으로 아침나라에서 출간됐다. 2017년 저스틴 채드윅이 연출하고 알리시아 비칸데르, 크리스토프 발츠, 데인 드한 등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 각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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