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남부의 작은 마을 더닌에 살던 오드리스콜 집안 삼 남매 이야기입니다. 큰딸 에일리는 십 대 초반이고, 남동생 마이클은 아홉 살, 여동생 페기는 일곱 살입니다. 더닌은 한때 마음씨 좋은 이웃들이 사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몸도 마음도 지쳐 거의 왕래조차 없습니다. 어느 날 에일리는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이 책을 덮으며 ‘다들 집에 가서 어른들을 도와드려라’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 두려움에 싸여 집으로 달려옵니다. 아빠는 머리를 감싸고 돌담 위에 앉아 있고 엄마는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썩은 냄새가 공기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불길하고 음산한 역병이 온 마을을 휩쓸어 밭마다 썩은 감자가 땅에서 뒹굴었습니다.
아일랜드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었고 이후 아일랜드 역사의 방향을 결정한 대기근이 절정에 달했던 1848년(아일랜드 사람들이 블랙48이라고 부르는 해입니다), 집에 식량이 떨어지자 아빠는 돈을 벌겠다고 공사판으로 나간 뒤 연락이 끊어집니다.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약해지자 이번에는 사람들 사이에도 여러 전염병이 유행합니다. 오드리스콜 가족의 막내딸 브리짓이 열병에 걸려 죽지만 이 아이의 마지막을 함께해줄 신부님은 앓아누워 있고 장의사도 얼마 전 죽어 장례를 치를 수도 없습니다. 엄마는 슬픔 속에서 브리짓을 산사나무 아래에 묻어주고 아빠를 찾으러 나갑니다. 에일리, 마이클, 페기 삼 남매는 강제수용소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친척 할머니를 찾아 먼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이들이 경험하고 목격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감자는 만 년 전부터 남미에서 재배됐지만 16세기가 돼서야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유럽에 전파됐습니다. 감자는 같은 면적에서 자란 다른 곡물에 비해 세 배의 열량이 있으며 영양소도 풍부했습니다. 게다가 험한 기후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랐습니다. 하지만 초기 유럽인들은 땅 밑에서 자라는 감자를 악마의 사과라고 부르며 식용을 거부했습니다. 감자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감자꽃을 그린 옷을 입기까지 했습니다. 16세기 이후 영국에 의한 정복과 뒤이은 반란 및 종교전쟁 등으로 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던 아일랜드는 감자를 대규모로 경작한 첫 지역입니다. 18세기에 아일랜드인의 주식이 됐고 감자마름병이 아일랜드뿐 아니라 전 유럽에서 발생했지만 유독 아일랜드에서 피해가 심각했습니다.
하지만 감자에 대한 높은 의존만으로 대기근을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1800년 연합법에 의해 영국에 복속된 아일랜드는 영국 정부가 임명한 아일랜드 총독 치하에 있었습니다. 토지는 대부분 영국에 거주하는 영국계 부재지주가 소유했고 아일랜드인들은 영세 소작농이었습니다. 빈곤한 소작농들은 감자와 소금 외에는 먹을 것이 없었던 반면 이들로부터 걷은 소작료는 영국의 지주에게 보내졌고, 지주와 소작농 사이에는 지주의 대리인이 층층이 있어 중간관리자이자 중간 수탈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대기근이 발생한 뒤 중간관리인 시몬스가 오드리스콜 삼 남매에게 ‘영주님께서는 저주받은 땅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가셨다. 이제 더 이상 소작은 없고 생계수단이 없는 집은 모두 강제수용소로 보내라’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선언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심지어 영국인들은 대기근 시기에 피해를 면한 곡물을 영국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오드리스콜 삼 남매는 발라커베리 항구에서 곡물 자루들을 실은 수레가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화물선으로 향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때 한 남자가 “우리 동포들이 배를 곯으며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아일랜드 땅에서 기른 곡식이 영국인들의 배를 채우러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고 울분에 차서 외칩니다. 호송 책임자는 ‘곡물은 돈을 받고 판 것이니 외국으로 보내도 문제없다’며 흩어지라고 명령하고 군인들이 곤봉을 휘두르지만 성난 군중은 물러나지 않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18세기 식량 부족기에는 아일랜드 정부가 상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곡물 수출을 금지해 식량 가격을 안정화시켰지만 대기근 시기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 연재한 서른 편이 넘는 작품 중 이 소설만이 유일하게 아이들을 위한 동화입니다. ‘슬픈 아일랜드’가 높은 평가를 받고 수많은 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일랜드 대기근이라는 역사적 재앙을 다룬 작품이어서인지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저 역시 아이들에게는 가급적 밝고 행복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비극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콘론 맥케너는 아일랜드의 가장 힘든 시절을 아일랜드의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도록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아일랜드를 넘어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에게 읽히는 작품이 됐습니다. 저는 이 짧은 동화를 읽으면서 몇 번이고 ‘끙’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또 어른들에게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썼습니다.
작가는 이 소설의 속편을 두 권 썼습니다. ‘들꽃 소녀’와 ‘고향의 들녘’이라는 작품인데 아이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대기근 전 아일랜드 인구가 800만 명이었는데, 대기근 시기에 100만 명이 죽고 또 다른 100만 명이 아일랜드를 떠났습니다. 첫 글이 앞의 100만 명에 대한 이야기인 반면 속편들은 뒤의 100만 명을 그린 책인 것 같습니다. 이 책들도 번역되기를 희망합니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마리타 콘론 맥케너는 195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소설가입니다.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작품을 스무 편 이상 썼으며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입니다. 어린 시절 입양되어 생부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는 입양됐다는 사실이 자신을 소설가로 이끈 것 같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대학 진학을 미뤄야 했습니다. 이후 결혼과 출산이 이어졌지만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던 콘론 맥케너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문학 강좌를 들었고 1990년 첫 작품 ‘슬픈 아일랜드’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즉각 베스트셀러가 됐고 1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됐습니다. 한국어판은 2006년 이명연의 번역으로 ‘산사나무 아래에서’라는 제목으로 산하에서 출판됐고 2013년 현 제목으로 변경된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1999년 영국에서 4부작 미니시리즈로 제작해 방송했습니다. 국제독서협회상, 아일랜드독서협회상,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아동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 일반인이 경제현상에 쉽게 다가가고 동시에 경제와 금융 종사자가 소설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 속에서 경제를 발견하는 연재입니다. 2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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