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고 알뜰한 당신이라면, 돌아오는 혜택이 가장 큰 카드를 쓰세요.” 금융상품 추천 플랫폼 ‘뱅크샐러드’(www.banksalad.com) 홈페이지에 가면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문구다. 김태훈(30) 대표는 3년 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레이니스트’를 설립하고 1년 전부터 해당 서비스를 시작했다. 뱅크샐러드는 사용자가 소비 패턴을 입력하면 사용자의 소비 내용에 부합하는 혜택을 제공하는 신용카드를 추천해준다. 카드를 바꿀 경우 혜택을 얼마나 더 받을 수 있는지 1원 단위까지 계산해 보여준다. 현재까지 뱅크샐러드를 방문한 사람은 약 5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추천 카드를 발급받은 사용자는 카드 결제액의 평균 4% 정도를 절약하고 있다.
동료 9명과 함께하는 레이니스트는 올해부터 이익이 나기 시작했다. 뱅크샐러드를 통해 고객이 카드를 발급받으면 레이니스트는 카드사로부터 중개 수수료를 받는다. 최근에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회사를 설립한 지 3년(기술 개발 2년, 서비스 시작 1년) 만에 만들어낸 결과다.
일대의 명물 ‘서태웅 호떡’ 대표
레이니스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김태훈 대표는 사실 ‘서태웅 호떡’ 대표로 대학 시절부터 유명했다. 의 훈남 슈터 서태웅의 이름을 딴 것 같지만 실은 ‘서강대의 태훈이와 주웅이가 하는’의 줄임말이다. ‘주웅이’는 그의 절친이었다. 노점엔 서강대 학생임을 인증하려고 학생증을 붙였다. ‘관시’(關係)를 이용한 마케팅이다. 각종 씨앗을 듬뿍 넣은 ‘서태웅 호떡’은 금세 일대의 명물이 됐다. 하루 500~600장의 호떡을 팔았다. 그는 어떻게 호떡을 팔게 된 걸까.
“당시에는 그저 뭔가 재미있는 일을 찾아나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어요. 군 입대(해병대)를 앞두고 뭐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호떡 장사를 했어요. 매일 돈을 쓰기만 하고 살았으니 좀 벌어보는 건 어떨까 하고 시작했죠.”
재미있는 일을 찾아 시작한 거라고 했지만 준비는 만만찮았다. 계획을 세워놓고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 과외부터 막노동까지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300만원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차별화된 호떡을 만들기 위해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 유명한 호떡집에서 기술도 전수받았다. 호떡을 팔아서 번 돈으로 그는 부모님의 해외여행 경비를 보탰고, 단짝 친구는 서울 생활을 도와준 이모부의 슈퍼마켓에 새 셔터를 달아드렸다.
2005년 서강대 앞에서 호떡을 팔던 그는 2013년 레이니스트를 설립했다. 졸업 뒤 취직 대신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뭘까.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근데 저는 결심이라는 단어가 좀 맞지 않다고 봅니다. 결심은 ‘난 이걸 해야겠어!’ 이런 것을 말하는데, 저는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그냥 흘러가다보니 창업을 하게 된 거였죠. 예를 들어 궁금한 내용을 질문하기 위해 결심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질문을 하는 거죠. 창업이라는 건 실제 세상을 들여다보며 뭔가 질문이 생겼을 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질문이 생겼어요. 지내다보면 신용카드를 쓸 일이 많은데 팸플릿을 읽어봐도 나에게 어떤 카드가 어떤 혜택을 주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더라고요. ‘어, 이거 왜 이런 건가요? 왜 금융사들은 정보를 이렇게 제한적으로 주는 거죠?’ 근데 이런 답변만 돌아오더라고요. ‘야, 세상이 원래 그래. 금융사들은 뭐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아니. 그게 원래 당연한 금융의 논리야.’”
‘정보의 비대칭성’에 주목그는 이렇게 한쪽 정보가 부족한 것을 일종의 정보 비대칭성이라고 보았다. 어째서 은행이나 금융사가 제공하는 정보는 이렇게 복잡하고 제한적일까? 사람들이 꼭 필요로 하는 정보라면 더 알기 쉽고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뱅크샐러드 서비스는 그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됐다.
학생 시절에 창업을 고민했으므로 회사를 설립하는 방법 같은 것은 몰랐다. 배워야 했다. 졸업을 1년 앞두고 경기도 안산에 있는 창업사관학교에서 1년 동안 창업과 관련된 교육을 받았다. 창업사관학교 교육을 모두 마친 뒤 뜻이 맞는 대학 친구들과 레이니스트를 설립했다.
막상 회사는 차렸지만 신용카드 혜택 정보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오피스텔을 빌렸다. 함께 창업한 동료들과 함께 한국에 있는 모든 신용카드의 혜택을 표준화하기 시작했다. 총 2500개의 카드, 25만 개의 혜택을 모두 표준화한 데이터로 만들었다. “눈 뜨면 출근, 눈 감으면 퇴근이었죠. 오피스텔 한쪽에 있는 골방에서 돌아가며 잤습니다. 지금은 카드사나 금융사와 제휴해서 정보를 제공받지만, 창업 초기엔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찾아서 수기로 데이터를 수집했어요.”
표준화 작업을 하는 2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오피스텔 임대료부터 직원들 월급까지 3억원 정도의 빚을 떠안게 됐다. 정부로부터 창업자금 2억원, 부모님에게서 1억원을 빌렸다. 그러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두려움보다는 자신이 세운 가설을 검증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어쨌든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 했다.
“빚이 쌓인다고 해서 엄청 두려웠던 건 아니었어요. 물론 누구나 빚내지 않고 자기 돈으로 사업을 하고 싶죠. 하지만 정직하게 본다면 제가 CEO니까 당연히 그 정도의 투자는 해야 하고, 또 월급도 줘야 하잖아요. ‘어휴,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지?’ 이런 자책은 없었습니다. 그저 ‘아, 내가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했으니 빚이 3억원이 됐구나’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2500개 카드, 25만 개 혜택 표준화부모님의 말 없는 지원과 신뢰도 도움이 됐다. “제가 부모님한테 1억원을 빌렸다고 하면 다들 되게 부자인 것으로 알더라고요. 사실 그 돈은 저희 아버지도 빚내서 다시 저한테 빌려주신 거예요. 그러면서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다만 그런 말씀은 한번 하신 적 있으세요. 지켜보는 게 제일 힘들다고, 다독여주고 험담하는 건 쉽다고. 그때 부모님이 진짜 저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다행히 뱅크샐러드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지나고는 그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뱅크샐러드 서비스도 안정돼가고 최근에는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지만 그는 3년째 24시간 일한다.
“레이니스트는 기본적으로 오전 10시 출근, 저녁 7시 퇴근입니다. (한숨) 근데 뭐, 사실 하루 종일 일이죠, 24시간. 잠을 잘 때도 회사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와 관련된 꿈을 꿉니다. (웃음) 이왕 창업을 시작했으니 잘해야 하는데, 모든 게 다 처음 배우는 거라. 그래도 회사가 계속 커나가려면 새로 시작하는 일도 전문가만큼, 아니 그보다 월등히 더 잘해야죠.”
그에게 창업은 과학이다.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나가는 작업이다. “창업은 결국 답이 없는 것들 속에서 새로운 답을 찾아야 하는 일이에요. 이렇게 하면 될까? 이런 식으로 항상 새로운 가설을 세워서 검증하는 작업이 이어집니다. 검증이 되면 좋은데 검증이 안 돼서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일도 빈번하고. 그러면 또다시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합니다.”
그렇게 회사를 운영하다보면 지칠 때도 많다.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물었다. “(깊은 한숨) 동료가 힘들 때, 그때 제일 지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원하던 것이 같았는데 지내다보면 그게 바뀌거나 달라질 수 있잖아요. 그러다보면 서로 갈라지기도 하고요. 사실 맨 처음부터 같이 하던 공동창업자가 6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3명이 남았습니다. 그런 부분이 좀 힘들었습니다.”
가장 기쁜 것도, 가장 힘든 것도 사람사람이 힘든 만큼 일을 하며 동료애나 전우애가 생기는 것이 사업을 하면서 얻는 큰 기쁨 가운데 하나다. “24시간 함께 고민하고 일하고,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엎고 증명하고 성공하고 이런 과정에서 끝까지 함께 가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동료애나 전우애 같은 것이 쌓이더라고요.”
6월 말, 레이니스트는 뱅크샐러드 모바일 앱 서비스 또한 시작할 예정이다. 카드 사용자의 문자를 자동으로 인식해 소비를 코치해주는 식이다.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우선은 제가 처음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금융정보의 비대칭성을 좀 해소시키고 싶고요. 지금은 신용카드 혜택만 제공하고 있지만 예금, 적금 및 CMA(종합자산관리계좌) 등 다양한 금융정보를 알기 쉽게 공유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어요. 그리고 해외에도 진출해보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네요. 경기가 어렵잖아요. 젊고 똑똑한 사람은 많은데 일자리는 없고. 창업한 사람들이라도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데 일조해야죠.”
마지막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다. “저도 잘 못하고 있지만 정말로, 정말로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창업은 굉장히 과학적인 접근이거든요. 창업을 과학적 접근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좋은 창업가도 나오고 개척가도 나온다고 생각해요. 근데 다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처럼 ‘아, 나도 소셜네트워크를 해서 미친 듯이 돈 벌어야지’ 이렇게 욕심만 앞세우며 달려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급하게 달리면 넘어져요. 과학적으로 접근하되, 마음을 비우고 시작해보라 하고 싶네요.”
글 김광희 제6회 손바닥문학상 당선자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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