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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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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어른’ 되려고 펜 들고 싸웁니다

발행 중단 사태 극복하고 <동대신문> 지키는 이승현 편집장
등록 2015-05-20 09:01 수정 2020-05-02 19:28

5월2일, 동국대학교 18대 총장으로 한태식 교수(보광 스님)가 선출됐다.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거쳐온 결과였다. 지난해 12월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등이 다른 총장 후보였던 김희옥 전 총장에게 후보 사퇴를 종용한 것이 알려졌다. 이에 따라 보광 스님은 유일한 후보가 됐다. 동국대가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구성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그의 논문 가운데 2편은 표절, 16편은 연구윤리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보광 스님은 그 결정을 강하게 반박했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정당한 소명 절차를 무시하고 편파적으로 판정한 것이니 재심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논란의 와중에 학생들은 후보 사퇴를 종용한 승려들을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및 사립학교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고발했고 학교 광장 조명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교수들과 함께 단식투쟁도 했다. 혼란의 가운데서 은 창간 65년 만에 ‘발행 중단’ 사태를 맞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글의 힘’으로 위로받고 국문과로
이승현  편집장. ‘글의 힘’을 믿는 그는 학생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권력의 부당함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매체로서 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승현 편집장. ‘글의 힘’을 믿는 그는 학생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권력의 부당함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매체로서 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승현씨는 편집장이다. 어떤 계기로 학보사에 들어갔느냐는 물음에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저는 학교를 굉장히 오래 다니는 중이에요. 07학번으로 입학해서 휴학도 종종 했어요. 전과(학과를 바꿈)도 했고요. 휴학하는 동안 어려워진 아버지의 출판사에서 일을 도와드리다 복학했어요. 어느 날 문득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대학생들이 많이 하는 대외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전공인 국문학과 밀접하고 학교 안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다가 신문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애초 언론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다.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글이 좋았다. 그는 안양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건축학을 공부했다. 공부를 잘해서 들어간 외고지만 입학 뒤에는 성적이 바닥을 쳤다. 선생님들은 그런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에게만 신경 쓰는 게 눈에 확연히 보였다. 그것이 상처가 됐다. “너 요즘 무슨 일 있니?”라고 물어주는 어른이 없다는 것. 거기서 받은 상처를 문학을 통해 위로받았다. 건축학도 좋았지만 위로받았던 그 힘에, 글의 힘에 국문학으로 전과를 하고, 자연스럽게 글을 쓸 수 있는 신문사에 들어갔다.

교내 신문사 환경은 녹록지 않다. 들어오겠다는 기자도 잘 없고 그나마 들어온 학생도 다시 나가기 바빴다. 강제로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승현씨는 2년 만에 편집장이 됐다. 원래는 5학기, 2년6개월을 활동해야 맡을 수 있는 자리지만 그만큼 사람이 없었다.

“요즘 학생 언론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요. 읽지도 않지만 들어와서 활동하겠다는 사람도 없어요. 그럼에도 ‘남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도 잠깐 발을 담갔다가 계속 자리를 지키는 거고요.” 왜 그는 ‘남는 사람들’이 되었을까. “끝까지 있게 하는 힘이 있어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해야 할 말을 하고 의문이 나는 점은 파헤쳐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죠. 우리들 사이의 유대감도 큽니다. 졸업하고 신문사를 나와도 계속 찾아주는 선배님들이 계세요.”

총장 후보자 표절 다뤄 ‘발행 중단’ 통보

학교 밖에서 종이매체가 쇠락해가는 것처럼, 학교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 수 1만 명이 넘는 학교에서 그중 3분의 1에게만 나눠줄 수 있는 4천 부를 찍는데, 점점 그 부수를 줄여나가야 했다. 학교의 지원이 줄어들어서다. 예산이 쪼들리면 부수를 줄이는 게 답이었다. “신문이라고 말하기에도 좀 그렇죠.” 그는 멋쩍게 웃었다.

“발행 부수가 적으면 결국 ‘읽는 사람만 읽는’ 구조가 돼요. 교수님이나 관심 있는 학생 일부만 읽겠죠. 이 신문이 학교 밖까지 퍼질 수도 없어요. 이런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요.”

은 지난 3월 발행 중단 통보라는 새로운 차원의 위기를 맞았다. 보광 스님의 논문 표절 논란을 다뤘기 때문이다. 운영자금을 대는 학교 미디어센터가 발행 중지를 결정했다. “당시 미디어센터장이었던 교수님이 보광 스님의 표절을 다루는 것이 맞지 않다고 하셨어요. 다룰 거면 1:1 정도의 분량으로 ‘표절 의혹’과 ‘그에 대한 반박’을 똑같이 다루라는 말도 들었어요. 이런 ‘기계적인 중립’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미 학내 기관인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표절이 의심되는 논문 30편 가운데 표절이 2편, 비난 여지가 심각한 중복게재가 3편, 비난 여지가 약한 중복게재가 13편, 허용 가능한 중복게재가 12편이라고 얘기했어요.”

발행 중단 통보를 받기 전인 지난해 12월에도 갈등이 있었다. 김희옥 전 총장 후보 사퇴와 관련한 외압에 대한 기사를 쓸 때였다. “기사 내려라, 팩트(fact)만 써라, 딱 ‘후보 사퇴’ 건만 말해라 등 편집권 침해가 심했어요. 그러나 발행 중단을 통보할 때도, 기사 방향에 대해 개입할 때도 온당한 이유를 들을 수 없었어요. 전달자와 감시자라는 언론의 역할과는 무관한 결정이었습니다.”

발행 중단을 통보받은 이승현 편집장은 이 사건을 알릴 다른 길을 찾아나섰다. 동국대 총장 선출과 관련한 사건과 함께 발행 중단 사태를 언론사 등에 제보했다. 학교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총장 대리 업무실도 찾아갔다. 많은 학생들이 논문 표절 사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설문해 그 결과를 학교에 제시하기도 했다. 이 보도를 한 이 계속 발행돼야 할 필요성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당시 미디어센터장이었던 해당 교수는 보직을 그만뒀고 학교 쪽은 ‘발행 중단’이 아닌 ‘발행 휴간’이었다며 재발행을 허가했다. 그러나 전 미디어센터장은 이승현씨에게 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자신은 객관성을 가장하여 특정 후보 편들기나 대변인 역할을 하지 않았고, 보도를 금지한 게 아니라 신뢰성을 담보하라는 의견을 낸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저는 일개 학생이니까 고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해요. 그렇지만 외압으로 신문 발행이 중단되거나 언론이 다뤄야 할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것은 누가 봐도 옳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 문제에서는 타협할 수 없어요. 학교 쪽의 일방적 결정으로 독자와의 약속을 깨는 것도 옳지 않고요.”

학생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대학
5월13일  편집회의가 열렸다. 격주로 발행일이 돌아오면 이승현씨는 학교에서 2~3일씩 꼬박 밤을 새운다.

5월13일 편집회의가 열렸다. 격주로 발행일이 돌아오면 이승현씨는 학교에서 2~3일씩 꼬박 밤을 새운다.

이승현 편집장이 생각하는 학내 언론의 역할은 뭘까. 그는 “사회는 물론 학교 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학생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가 보이는 모습이 TV 속에서나 보던 정치인과 꼭 닮았더라고요.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의 입장만 관철하고, 그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논문 표절’은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에서 관용되면 안 되는 일인데, 학교는 교수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어른이 아이 가르치듯이 ‘너희가 뭘 아냐, 이건 학교 운영에 관한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을 안 하는 거죠.”

이번 일을 겪으면서 ‘중심잡기’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사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보도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수학 공식처럼 똑 떨어질 수가 없어요. 항상 그 ‘객관성’을 의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동국대의 총장 선임 과정 등을 바라보면서 학교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지는 것이 옳다고 믿었기에 그 관점을 유지했어요. 그런데 별별 말을 들었어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학생들의 태도 역시 다 다르죠. 그 속에서 제가 스스로를 계속 점검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중심을 잡고 ‘옳다고 생각하는 무엇’을 지속해나가기가 어려워요. ”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대학의 학생 언론은 최근 위기와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2010년 중앙대에서는 ‘대학 언론은 죽었다’며 언론 장례식을 열었다. 학교 예산이 들어가는 교지나 학교신문이 학교 쪽의 편집권 개입 등으로 위기를 겪자 아예 자치언론으로 방향을 돌리거나, 새로운 자치언론을 발행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이들은 예산 문제에서 자유로운 홈페이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기도 한다. 인쇄 작업을 거치지 않아 빠르게 바로바로 독자들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런 흐름의 한가운데에서 이승현 편집장은 이 학교와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언론 본연의 역할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내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 발행 기관인 학교를 홍보하고 학교가 원하는 말만 골라 넣는 것은 언론이 아닌 찌라시에 불과하다. 그는 이 ‘찌라시’가 아니라 ‘언론’으로서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활자의 힘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 활자의 힘이 잘못 발휘되면 위험해진다고 생각해요.” 그가 을 지키기 위해 펜을 들고 싸우는 이유다.

취업 준비하며 발행일엔 밤샘 편집

이승현씨는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이제 갓 돌이 된 조카 사진을 보여줬다. 볼이 통통한 여자아이가 주먹을 꼭 쥔 채 웃고 있었다.

“저는 아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조카가 태어나니까 무척 예뻐요. 늘 사진을 보고 웃어요. 조카가 생기니까 ‘얘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려면 원칙은 지키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어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지켜야 할 것은 꼭 지키는 세상을 꿈꾸게 돼요. 나 하나만 바라보는 것에서 세계가 엄청 넓어졌어요.”

이승현씨는 현재 휴학생이다. 여느 취업준비생들처럼 영어 공부를 하고 바쁘게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2주에 한 번 발행일이 다가오면 학교에서 이틀, 사흘씩 밤을 꼬박 새운다. “바쁘죠. 그렇지만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저는 좀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제가 열심히 무엇이든 하다보면 답을 찾게 되겠죠. 그 답이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납득할 수 없는 일에는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글 장희원 제6회 손바닥문학상 수상자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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