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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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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들, 내 손에서 나왔어요

교직을 떠나 아이언맨 헬멧과 슈트를 만들며 ‘새 삶’ 찾은 구자원씨
등록 2015-05-07 15:19 수정 2020-05-03 04:28
본인이 직접 만든 다프트펑크(프랑스 출신 전자음악 듀오) 헬멧을 쓰고 있는 구자원씨. 그의 옆에는 지금까지 만든 아이언맨 헬멧, 다프트펑크 헬멧들이 진열돼 있다.

본인이 직접 만든 다프트펑크(프랑스 출신 전자음악 듀오) 헬멧을 쓰고 있는 구자원씨. 그의 옆에는 지금까지 만든 아이언맨 헬멧, 다프트펑크 헬멧들이 진열돼 있다.

2008년, 한국에서 처음 영화 이 개봉했다.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를 떠나) 아이언맨이 악을 무너뜨리는 극적인 스토리와 그가 자아내는 믿을 수 없는 능력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새로운 히어로의 탄생이었다.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고 덕분에 피규어를 비롯한 관련 콘텐츠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특히 아이언맨이 입었던 슈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구자원(43)씨는 그때 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석사과정까지 수료하고 자리잡은 직장이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또 관련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아이언맨 헬멧을 만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의 첫 아이언맨 헬멧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에서 샘플링 작업을 하다가 완성됐다. 어쩌다 만들긴 했지만 실제 사람이 쓸 수 있는 헬멧을 만들어놓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 어쩌면 이게 오랫동안 자신이 찾아온 직업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뒤 그는 8년 동안 일했던 학교를 떠나 ‘m2design’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언맨 헬멧과 슈트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게 벌써 7년 전 일이다.

더 실패하고 더 배워야 했다

지난 4월9일 경기도 시흥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를 만나 아이언맨 헬멧과 슈트를 만들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해 들었다. “우선 유학을 다녀오지 않아서 교수 되기가 어려웠어요. 산업디자인학과라고 해도 유학을 다녀오고 박사과정을 밟아야 교수가 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당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크게 보람을 느끼지 못했죠. 저 혼자만 열심히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거든요. 무엇보다 그즈음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됐어요. 늙어서도 은퇴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많이 고민했죠.”

고민을 끝낸 그는 작업실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대학생 때부터 월세방 대신 가지고 있던 작업실이었다. 더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과 집 근처에 위치한 지하 작업실을 오가며 아이언맨 헬멧과 슈트를 만들었다.

“일단은 시작을 해야 했어요. 샘플링 작업을 하면서 우연히 만들긴 했지만 ‘아, 충분히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겠구나’ 생각했거든요. ‘세계 1등은 몰라도 한국에서 1등은 할 수 있겠구나’ 했죠.”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가는 그에게 시련도 컸다. 무엇보다 가족들의 우려와 걱정이 만만치 않았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지금 정도의 삶으로 쭉 이어나갈 순 없지 않느냐’며 가족을 설득했다.

“시간강사라 해도 사실 파리 목숨이거든요. 교수가 임의로 강의를 주고 빼는 일도 빈번하고요. 거기에 방학 때는 수업이 없어서 1년에 4개월은 무급이에요. 그럴 바에 누가 하는 사람이 없을 때 한번 해보자고 설득했던 거죠.”

그는 알고 있었다. 모조품은 많았지만 실제 작동하는 동시에 사람이 착용할 수 있는 헬멧을 개인이 만들어낸 적이 없다는 것을. 특히 아이언맨 헬멧은 기술적으로 구현해내기 가장 어렵다고 여겼다. 그걸 만들고 나면 다른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풀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막상 그렇게 시작했지만 혼자 알아보고 터득하는 것이 쉽진 않았다. 일은 갈수록 어렵고 또 버거웠다. 강사 일을 하면서 취미로 건담이나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모델 등은 만들어봤지만, 아이언맨 헬멧이나 슈트는 또 다른 차원의 작업이었다. 더 실패하고 더 배워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얼마 전 딸 한 명이 더 생겨 이젠 ‘딸들’이 됐다) 작업을 하다 밤이 되면 딸을 유치원에서 집으로 데려오고 다시 작업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대부분의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작업은 보통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이후 하루 5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다. 그렇게 작품을 만들었지만 한동안 수입은 없었다. 완성된 작품을 블로그에 올리고, 덕분에 ‘m2design’ 블로그도 꽤 유명해졌지만 그게 수입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생활할 정도는 벌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철이 없었죠. (웃음) 한 3년 정도는 수입이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나니 겨우 마이너스는 면하게 되더라고요. 그것도 아이언맨 헬멧 같은 걸 팔아서 나는 수익이 아니에요. 관련된 일을 하니까 다양한 제작 의뢰가 들어오고 그런 것들이 돈이 되는 거죠.”

어제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구자원씨가 작업실에서 헬멧에 장착할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느리지만 정교하다.

구자원씨가 작업실에서 헬멧에 장착할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느리지만 정교하다.

5년 정도 지나자 조금씩 수익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판매되는 아이언맨 헬멧과 슈트 개수는 1년에 2~3개 정도다. 그걸 팔면 1천만원 정도 된다. 진짜 수입은 의류 매장의 전시물이나 영화 소품 등을 제작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수익이 아주 불규칙해요. 그런 부분은 아직도 힘들죠. 그래서 대출이 쌓였다가 영화 소품 같은 게 대량으로 제작 의뢰가 들어오면 그것으로 정리하는 식으로 지내고 있어요. (웃음) 그래도 요즘 들어서는 친구들이 부러워해요. 은퇴 걱정 없으니 좋겠다고.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눈만 보이고 손만 있으면 할 수 있으니까요.”

그가 하루의 대부분을 지하 작업실에서 보낸 시간도 어느덧 7년이 지났다. 좋았던 순간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항상’이라고 답했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항상 새롭고 좋아요. 될 수 있으면 비슷한 프로젝트를 안 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고요. 새로운 작업을 추구하다보니, ‘이런 것도 만들 수 있어요?’라고 물어오는 의뢰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이언맨도 모델이 계속 발전해왔고, 다 다르게 생겼잖아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작업실에 진열된 아이언맨 헬멧을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형태가 됐든 기법이 됐든 발전시켜나가려고 해요. 혼자 하는 일이라 만족하는 순간 끝이거든요.”

매번 작업을 앞두고 ‘어제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자기 눈에는 계속 좋아지는 것이 보인다고. 더디더라도 작업이 계속 발전되는 것에서 그는 큰 만족감을 느꼈다.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한 우물을 파다보면 그 옆에 있는 지식은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거든요. 그러면 배움의 크기가 커져요. 이른바 역삼각형 형태의 지식이 되는 거죠.”

‘아이언맨 제작 공정과 관련해서는 지금도 충분히 독보적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어휴, 아직 멀었어요. 파도 파도 끝이 없어요. 평생 배워야 한다는 말을 요즘 절감하고 있습니다.”

“아이언맨 슈트 입은 슈퍼맨 만들고파”

작업하면서 힘든 점은 없을까? 그는 혼자 일하는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이라고 했다. 일을 배우러 찾아온 사람도 몇몇 있었지만 실력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같이 일할 사람이 생긴다 해도 월급을 줄 수 있는 상황은 되지 않았다. 불편한 시선들도 있었다.

“아이언맨 사진을 보고 똑같이 만드니까 쉬울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근데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도면을 읽어내는 해석 능력부터 그걸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마인드도 있어야 하죠. 무엇보다 이걸 실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노하우도 상당히 필요한데 그 부분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는 경우도 있고요.”

모두가 그의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블로그에서는 가끔 소모적인 이야기가 오고 간다고 했다. 심지어 그가 만든 제작물을 자신이 만든 것처럼 사칭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블로그를 닫거나 (요청이 오지 않는 이상) 이전 게시물들을 삭제한 적이 없다. 그에게 블로그는 단순히 홍보 수단을 넘어 ‘m2design’으로 활동했던 모든 역사를 담고 있는 고서(古書) 같은 것이다.

“블로그 자체가 저한테는 포트폴리오거든요. 사람들은 어떤 작업으로 주목받게 되면 예전 작업들을 숨기는 경향이 있어요. 창피하다면서. 저도 물론 예전 것들을 보면 창피하죠. 근데 그 과정이 없으면 지금의 저도 없거든요.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블로그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만들어볼 생각은 없을까? 회의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저도 책으로 내고 싶지만 별로 먹히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뒀죠. 제가 돈을 아주 많이 벌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을 거예요. (웃음)”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기술적 부분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됐어요. 그래서 독자적인 것을 해보려고 해요. 예를 들어 아이언맨 슈트를 입은 슈퍼맨 같은 거요. 기존 캐릭터에 제가 만든 작품을 입히는 거죠. 또 한국 영화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이나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인생의 답을 찾지 못한 청춘들에게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한 청춘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하고 싶어요, 하지 말고 그냥 하세요. 그리고 젊을 때 하세요. 젊을 때 하면 실패해도 삶의 토양에 소중한 비료가 되지만 나이 들어서 시작하면 사고를 칠 수 있거든요. 그러니 돈이 없어도 도전해보세요. 예를 들어 로봇을 만들 의지가 있으면 쇳조각이라도 몇 개 주워서 만들 수 있어요. 일단 시작해보세요. 그러다보면 길이 보일 겁니다.”

글 김광희 제6회 손바닥문학상 당선자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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