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을 때마다 위안을 받는다. 그 안에는 소외되고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사는 자들의 생활이 있고 이렇게 굴러가면 안 될 것 같은 비틀린 현실이 있다. 무심코 읽은 한 문장에 마음이 둔중하게 울린다. 마음속에 종이 한 장이 있다면, 세상을 살기 위해 애써 상처받지 않은 척하려고 잘 접어둔 종이가 소설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반듯하게 펴지는 느낌이다. 내 치부가 훤히 드러나지만 소설은 ‘괜찮아’라고 말한다. 소설을 읽는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지하 공장 그 어둑어둑한 세계
태기수(48) 작가의 시작은 ‘몽상’이었다. 그는 어렵게 자랐다. 전북 임실에서도 하루 두 번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에서 자랐다. 그런 농촌 마을까지 1970년대의 ‘잘 살아보세’ 하는 새마을운동 노래가 퍼졌다. 서로 비슷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았던 마을에서 갑자기 ‘잘 살아보자’라는 욕구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작지만 단단하게 응집돼 있던 사회가 조금씩 흩어졌다. 도시로 가거나 집안을 일으킬 형제의 뒷바라지를 위해 어린 나이부터 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의 아버지는 양조장을 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슬레이트 지붕이 있을 정도로 잘사는 집이었지만 어느 날 밤 도둑이 들어 집 안의 금고를 털어갔다. 금고에는 투자자들에게서 받은 투자금이 들어 있었다. 하루아침에 아버지는 도망자 신세가 됐다. 어릴 때 아버지를 본 적이 몇 번 되지 않았다. 집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슬쩍 채권자들이 찾아와 “아버지 어디 계시니?” 하고 묻기 일쑤였다.
어려워진 집안 형편 탓에 형제들은 일하러 뿔뿔이 흩어졌다. 그도 중학교만 마친 채 상경했다. 전주상업정보고등학교에 합격했지만 중학교를 다니는 일도 맏형의 도움이 아니면 힘들었다. 힘든 생활을 피해 막상 서울에 가보니 다를 것 없었다. 조그만 쪽방에서 형과 아버지가 지내고 있었다. 형은 그를 재단사로 키워볼 요량으로 자신이 공장장으로 있던 공장에 취직시켰다. 그는 군자교에 있는 한 봉제공장에서 재봉 보조일을 하게 됐다.
“‘속았다!’고 느꼈어요. 도시에 나가 있던 형·누나들이 한껏 꾸민 세련된 모습으로 집에 오곤 했거든요. 마치 밖에 있는 삶이 멋지고 매혹적인 것처럼. 그렇지만 현실은 아니었어요. 그 지하 공장 어둑어둑한 곳에서 하루 종일 일을 했어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0시, 어떤 때는 11시까지 일을 했죠. 원단에서 풍기는 화학약품 냄새가 늘 눈을 찔렸죠. 그때까지 나에게 ‘의식’이란 없었어요. 일하고 있으면 당시 대학생들이 운동이다 뭐다 해서 데모를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요. 나는 그저 팔자 좋은 사람들이 공부만 하면 되지 뭐하러 저렇게 시끄럽게 구나 하고 투덜댔어요.”
그는 형형색색의 원단들을 매만지면서 상상하기 시작했다. 힘든 현실로부터의 도피였다. 상상은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게끔 하는 원동력이 됐다. 어둡고 작은 이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공장일을 그만두고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도시 외곽에서 과도나 수세미를 파는 방문외판원도 했다. 잡지도 팔았다. 그러다 군대를 갔다. 거기서 ‘첫 독자’를 만났다.
군대에서 만난 ‘첫 독자’“군대 안에서 처음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어요. 무엇이 되었든 간에 무조건 썼어요. 구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첫사랑 이야기를 썼던 듯도 싶고…. 하지만 쓰면서 엄청난 좌절감에 휩싸였어요. ‘내가 뭘 감히 쓰나, 감히…’ 이런 마음에 썼던 글을 모두 화장실에다 버렸어요. 그때는 갱지 뒤에다 글을 썼거든요. 당시 부대에서는 그런 갱지들을 모아다 화장지로 썼어요. ‘에잇, 그냥 이거로 뒤나 닦으슈’ 하는 마음으로 버렸는데 부대장이 그 갱지 뒤편에 써놓은 글을 읽고는 이 글을 쓴 사람이 누구냐 하고 찾기 시작했죠.”
결국 돌고 돌아 그에게까지 이 글을 쓴 작가를 물었다. “솔직히 말해라, 너지?” 하고 묻는 말에 그는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뗐다. 하지만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저를 찾은 부대장이 ‘왜 뒷이야기를 안 썼니?’ 하며 뒷이야기를 마저 써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계속 써보라고, 자신이 휴가를 나가면 밖에서 원고지를 사다 주마, 하고 약속했어요. 제 ‘첫 독자’를 그렇게 만났어요.”
상상은 자꾸만 현실이 되어갔다. 감히 작가를 꿈꿀 수 없던, 지하 공장이 세계의 전부였던 ‘공돌이’는 작가가 되어보고 싶었고 글을 쓰게 됐다. 조금 늦은 나이지만 제대 뒤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정식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힘든 시절의 경험은 유전자의 사슬고리처럼 차곡차곡 엮여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는 1998년 에서 ‘소와 양’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했다. 어린 시절 체감한, 공동체가 부서지는 충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중편소설이었다. 작은 농촌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를 유지하고 단단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는지, 또 그 역사가 산업화로 인해 얼마나 쉽사리 무너지는지를 그렸다.
태기수 작가 작품의 가장 큰 힘은 독특한 상상력이다. ‘마로니에 공원에 이구아나가 산다’에서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이구아나가 돼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모르모트 인간’에서는 역으로 퇴화해서 꼬리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 나온다. 이러한 상상력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현실에서 비롯한 반항심이죠. 문학은 은유와 상징의 세계입니다. 작가는 항상 의식의 한가운데에 그것을 두고 있어야 해요. 세상에 있는 우리는 모두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고 출생도 달라요. 이런 현실에서 당연히 어떤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나올 수밖에요. 창작은 그걸 건드려볼 수 있는 작업이에요. 항상 무엇을 쓸까, 어떻게 쓸까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신문을 보다가 어느 한 사건을 보고 구체적으로 쓸 수도 있고 충동적으로 불현듯 쓰일 수도 있어요. 그것은 작품마다 달라요. 하지만 늘 고민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창작을 위해 고민하고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고뇌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작가는 일생 동안 그 질문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았다.
현실이 되어버린 ‘상상’은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옥탑방에서 살아가는 건조한 청춘의 삶이 이제는 그 옥탑도 아닌 옥탑방 옆, 물탱크까지 옮겨간 모습을 그린다. 옥탑방에서 여자친구와 동거를 하는 ‘세종’은 자신의 방 옆, 물탱크에 사는 한 사나이를 발견한다. 그 사나이와 만난 다음날, 갑자기 세종의 삶이 송두리째 물탱크 사나이와 바뀌어버리고 마는 이야기다. 2013년 7월, 이 작품은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연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각본을 썼다. 소설을 연극으로,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의 시작은 반 장난이었다.
“제 주위에 연극을 하는 친구가 여럿 있어요. 그중 이강선(스튜디오 반 대표)씨와 최진아 연출가와 어느 날 술자리를 가졌는데 친구들이 이 작품으로 연극을 만들어봤으면 좋겠다고 했죠. 장난 삼아, 계약금을 주면 써주겠다, 하고 잊고 있었는데 진짜로 계약금이 들어온 거죠. 정말 장난 삼아 말해서 일이 진행될 줄 몰랐어요. 평소 희극에 대한 욕심이 있던 차에 도전하게 됐어요.”
소설과 극작은 전혀 다른 길이었다. 이전에 희곡 작품으로 신춘문예 본심에 오른 경험이 있었지만 극작 훈련이 필요했다. 결국 작품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의 지원금을 받아 만들어졌다.
“소설이 무대 위에 올라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니까 묘한 기분과 함께 쾌감이 들었어요.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는 현재 경기도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예비 작가들이 밤낮없이 글을 읽고 쓰고 있다. 일찍부터 정한 꿈인 만큼 열정도 높다. ‘가난한 글쟁이’가 되어도 좋으니, 글을 쓰겠다는 심지가 굳은 제자들이다. 고작 고등학생이 쓴 소설이 얼마나 깊이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제자들의 작품은 읽는 맛이 있다. 때로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고 재기발랄하고 톡톡 튀기도 했다. 어린 학생들인 만큼 신선한 소재를 가져와 깜짝 놀라게 한다.
“한 제자가 가져온 원고지 10장 분량의 글을 읽었는데 ‘힙합’을 소재로 쓴 글이었어요. 학교 음악 시간 수행 평가 때 비트박스를 하는 이야긴데 학교 안에서 힙합과 랩으로 여러 사건을 벌이는 내용이었죠. 참 신선했어요. 찬찬히 보니 힙합 뮤지컬로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아이를 불러다 60장 분량의 단편으로 만들어오라고 했더니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단편을 들고 오더군요.”
열정 있는 제자를 만나는 일은 즐겁다. 그는 제자와 공동 집필하기로 마음먹고 차근차근 극작에 대해 가르쳤다. ‘청소년이 쓴 청소년 뮤지컬’인 셈이었다. 공동 집필한 작품은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올해 10월 중 무대에 오른다. 제자와 스승이 같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제자와 함께 ‘힙합 뮤지컬’ 작업도가르치는 대로 흡입력 있게 받아들이는 제자들이기에 더욱더 기교와 손끝으로만 글 쓰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글은 심지가 있게 마음으로 써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문청들은 고민하고 글을 읽고 습작하고 있다. 하늘 아래 더 이상의 서사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힘이 죽지 않는다고 믿고 싶다. 그가 힘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시작한 상상이 그에게 살아가게끔 한 힘이 되고 그것이 점점 현실이 되듯이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서 위로받아 세상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설은 죽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오늘도 상상을 하고 글을 쓴다.
글 장희원 제6회 손바닥문학상 수상자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물에 빠진 늙은 개를 건져주자 벌어진 일 [아침햇발]
[단독] 정보사, 계엄 10여일 전 몽골 북 대사관 접촉 시도…‘북풍’ 연관됐나
[속보] 윤석열 쪽 “오늘 대리인단 헌재 탄핵 변론준비기일 출석”
“백령도 통째 날아갈 뻔…권력 지키려 목숨을 수단처럼 쓰다니”
한덕수 대행 탄핵안 오늘 표결…국회의장, 정족수 결론은?
형사법 학자 “내란 반대했어도 회의 참여한 국무위원 처벌 받아야”
새 해운대구청 터 팠더니 쏟아져 나온 이것…누구 소행인가?
김상욱 “경제부총리 출신 한덕수, 보신 위해 경제타격 외면”
러시아가 실수로 쐈나…아제르항공 여객기 ‘격추설’ 짙어져
[단독] 윤, 안보실장 교체 하루 전 통보…계엄 판 깔기 ‘번갯불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