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을 사랑한다. “이명박 전 시장은 청계천으로, 오세훈 전 시장은 한강 르네상스 사업으로 기억되는데, 박 시장님의 구상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그런 것을 하지 않은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전 시장들이 치적 사업에 골몰해 랜드마크를 지어대서 온 서울이 몸살을 앓고 부채가 20조원, 하루 이자만 20억원이던 판이었다. 그는 말한다. 서울에는 이미 랜드마크가 많다고. 북한산과 도봉산, 한강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서울성곽 등 도시 곳곳에 배어 있는 600년 역사가 이미 훌륭한 랜드마크라고.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을 잘 잇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루가 다르게 갈아엎어지는 이 기억상실의 도시에서 더없이 반가운 말이었다.
제주도에는 올레길이 있다. ‘올레’는 집 대문에서 마을길까지 이어지는 아주 좁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어다. 오랜 세월 사람들이 다니면서 생긴 길과 그 길의 흔적을 이은 것이 지금 우리가 아는 올레길이다. 올레길 홈페이지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끊어진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내어 제주올레가 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다니는 여행이 띄엄띄엄 찍는 점의 여행이라면, 제주올레는 그 점들을 이어가는 긴 선의 여행입니다.” 이미 있던 것들을 창의적이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어주자, 명실공히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도보여행길이 탄생한 것이다.
장 지글러의 책 에 따르면, 지구의 식량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사실 지구는 지금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단다. 그런데도 세계의 한쪽에선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 다른 한쪽에선 식량이 남아도는데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식량이 아니라, 남아도는 식량을 굶주리는 사람과 이어줄 더 나은 아이디어다.
마침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는 ‘환지’라는 것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실록의 초고에서 추려진 종이, 과거에 낙방한 사람들의 답안지, 버리는 궁중 문서를 모아다가 세검정에서 흐르는 물에다 먹물을 씻어내고 절구에 찧어서 새로운 종이를 떴는데, 그것의 이름이 환지다. 요즘 주목받는 ‘리사이클링’의 개념인 것이다. 용도가 다한 종이의 생명을 새로이 이어주는 아이디어다.
티베트의 장례 풍습인 조장을 참관한 친구가 있다. 건조한 날씨 속에 일주일 정도 두어 검게 변한 주검의 살점을 칼로 발라 던져주면 새가 채어간다고 했다. 남은 뼈도 잘 빻아서 곡물가루와 섞어 던져줘, 마지막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몇 명만이 참관할 수 있고 무척 고요한 가운데 육신의 조각을 문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자, 옆에 있던 외국인이 속삭였단다. “봐, 그는 날고 있어”(Look, he’s flying). 죽은 이의 몸이 새를 통해 날아오른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다른 생명으로 이어진다.
김하나 카피라이터· 저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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