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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은 전세값으로 수렴할 수 있나


실제 주거가치는 전세금에 반영… 집값 상승 기대하는 보유가치가 집값 떠밀어
등록 2009-10-15 13:28 수정 2020-05-03 04:25
맑은 공기 속에서 아이들과 도란도란 소통하며 살아가는 게 집의 진정한 주거가치로 자리 잡을 때 가짜 가치들의 거품은 사라질 것이다. 경기 죽전에 있는 단독주택. 사진 한겨레 자료

맑은 공기 속에서 아이들과 도란도란 소통하며 살아가는 게 집의 진정한 주거가치로 자리 잡을 때 가짜 가치들의 거품은 사라질 것이다. 경기 죽전에 있는 단독주택. 사진 한겨레 자료

대가족이 오랜만에 모이는 명절의 단골 화두 중 하나는 자녀의 혼사나 내 집 마련이다. 이번 한가위에도 “연애 그만하고 장가 좀 가라” “전세 그만 살고 아파트 사라”는 가위눌린 덕담이 오갔을 것이다. 이 두 가지 덕담에는 공통점이 있다. ‘연애와 전세’가 일시적 사용의 의미라면 ‘결혼과 내 집’은 지속적 소유의 개념으로 경계지을 수 있다. 덕담에도 사용가치보다 보유가치를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사고가 스며 있는 셈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한국의 부동산은 나 홀로 건재함을 과시하며 덕담을 뒷받침했다. ‘부동산과 결혼하라’는 고정관념과 ‘주식과 결혼하지 말라’는 격언 사이의 괴리는 언제 좁혀질 것인가?

부동산의 가치를 사용가치와 보유가치로 나눠 살펴보자. 주택의 사용가치는 실제로 거주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이다. 사용가치를 마르크스는 구체적으로 유용한 것이라고 했다. 한계효용학파는 ‘꽃보다 남자’라는 실리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사용가치는 어떻게 가격으로 나타나는가? 그것은 전셋값으로 투영된다고 본다. 소유권만 빼고 모든 사용권을 갖는 전세의 가격이 주택의 원래 용도인 실주거 가치를 잘 드러낸다는 것이다.

집값에는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포함돼 있다. 이게 보유가치다. 하지만 세입자는 집값 상승의 이익을 얻을 수 없으므로 순수한 사용가치만으로 전세금을 지불한다. 집값은 투기적 가수요가 얹어져 결정되지만, 전셋값은 실수요에 의해서만 형성된다. 물론 전셋값도 주택시장의 수요·공급에 영향을 받고 매맷값 동향에 따라 왜곡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제도인 전세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만든 것이다. 집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경험적 믿음을 가진 집부자들이 구입자금 부담을 완화시키는 지렛대 수단으로 전세를 활용했다. 일반인도 전세 끼고 아파트를 사는 데 편승했다.

하지만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보유가치는 사람들의 심리에 따라 자주 변한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믿는 고전경제학은 효율적 시장 가설을 주장하지만 역사적인 경제위기와 거품은 모두 경제주체들의 비이성적 판단과 충동으로 발생했다.

주식의 내재가치를 산정할때 배당평가모형을 사용하는 것처럼 주택의 가치를 임대수익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배당평가모형이란 지속 가능한 기업이 매년 일정한 배당을 지급한다고 가정하고 미래에 들어오는 배당금을 현재의 가치로 할인한 뒤 합산해 적정 주가를 구하는 방법이다. 주택도 지속 가능한 내구재이므로 미래의 임대료를 이자율로 할인해 더하면 집의 가치가 나온다. 그런데 이게 전셋값과 일치한다. 일정 기간 나눠받는 임대료를 일시에 선불로 받는 게 전세금이기 때문이다. 월세를 전세로 전환한 것이라고 보면 쉽다. 결국 집의 실질 가치는 전세금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인터넷 논객들은 보유가치를 옵션으로 보고 집값의 구조를 설명하기도 한다. 재무관리에 나오는 옵션가격 결정모형을 단순화해 빗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전세가 2억원 하는 아파트의 매맷값이 5억원이라면 나머지 3억원은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옵션 프리미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집값은 전세금을 하한선으로 삼아 옵션 가격의 변동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주택시장이 안정된다면 옵션의 가치가 낮아지면서 집값이 전셋값에 근접하게 된다. 딘 베이커 미 경제정책연구센터 이사도 주택 가격이 종국엔 사용가치를 반영하는 정상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서 더 나아간 행복한 상상도 있다. 집주인에겐 보유비용이 발생한다. 보유가치 3억원에 대한 이자만큼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집주인은 실제로 손해다. 또 집주인은 재산세 등 보유세와 감가상각비도 감수해야 한다. 보유가치가 이러한 보유비용보다 작아지면 이론적으로는 집값과 전셋값이 역전돼야 한다. 실제로 일부 지방의 빌라는 매맷값이 전셋값보다 더 싸다고 한다. 그러면 전세제도가 없어질지 모른다. 아무도 집값보다 비싼 전세에 살지 않으려 할 것이므로. 하지만 세입자들이 모두 집을 사려고 하면 집값은 다시 올라갈 것이다. 또 2년마다 이사하지 않아도 되는 값어치가 만만치 않다. 다음 칼럼에선 집값의 버블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와 지표를 알아본다.

한광덕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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