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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와 계약자의 이해가 혼재된 생보사처럼 선비와 정승의 인격은 충돌할까
등록 2009-09-11 17:11 수정 2020-05-03 04:25
영화 < 두 얼굴의 여친 >. 사진 한겨레 자료

영화 < 두 얼굴의 여친 >. 사진 한겨레 자료

국내 생명보험회사 상장 1호가 곧 탄생한다. 동양생명이 9월 말 주식 공모를 거쳐 내달 증시에 첫 테이프를 끊을 예정이다. 생보사의 기업공개 논의를 시작한 지 22년 만이다. 그동안 네 차례의 상장 추진 시도와 세 차례의 상장자문위 구성이 말해주듯 ‘경제정의’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힘겨루기의 과정이었다. 보험업계엔 3전4기의 과실이지만, 보험 소비자와 시민단체엔 황량한 들녘일 뿐이다.

1987년 정부가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시작된 생보사 상장 논의의 쟁점은 생보사의 성격, 보험계약자에 대한 배당의 적정성 여부 등 4~5가지 정도다. 무엇보다 시민단체들은 1990년 이전의 계약자 배당이 매우 적었다고 평가한다. 계약자와 주주의 배당기준인 9 대 1에 훨씬 못미쳤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삼성생명은 1984년에 84억원의 이익이 발생했지만 이 중 무려 54억원을 주주 몫으로 돌렸다. 그러니 상장을 하려면 계약자들의 기여도를 인정해 주식으로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었다.

1999년부터 ‘상장 공론화→상장자문위 구성→상장 유보’를 반복하다가 논쟁에 마침표를 찍은 2007년 1월 상장안의 결론은 ‘뒤집기 한판’이었다. 생보사는 상호회사가 아닌 주식회사이며 그동안 계약자 배당은 불충분하지 않았으므로 이대로 상장이 가능하다는 3기 상장자문위의 최종안은 그 전에 두 차례 구성됐던 상장자문위의 견해를 자기부정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생보사 상장 논의의 흐름이 굴절된 계기는 의도했든 안 했든 ‘삼성’이었다. 1999년 6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자동차 부채 처리를 위해 채권단에 삼성생명 주식을 출연하기로 한다. ‘미운 오리’ 삼성차의 정리와 ‘황금 거위’ 삼성생명의 상장을 연계시킨 묘수였다.

그 다음엔 삼성은 가만있는데 삼성차 채권단이 총대를 멘다. 삼성생명 상장에 삼성보다 더 사활을 걸게 된 채권단은 2003년 1월 삼성생명 주식의 현금화를 위해 정부에 생보사 상장 기준 마련을 요구한다. 그 뒤 삼성차의 법정관리로 채권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인 채권단은 급기야 2005년 12월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 계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이 소송은 역설적으로 생보사 상장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2006년 2월 상장자문위가 다시 구성됐지만 예전과 달리 금융감독위원회가 아닌 증권선물거래소 산하였다. 보험계약자 보호를 위해 설치한 금융감독 당국이 아니라 업체와 주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증권선물거래소에 소속된 상장자문위의 성격 변화는 이미 결론을 예고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정재욱 세종대 교수(경영학)는 “주주와 계약자 간의 권리관계를 바탕으로 순수하게 추진돼야 할 생보사 기업공개가 삼성차 부채 처리와 공적자금 회수라는 정치 논리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국내 생보사는 형식상 주식회사로 상장하지만 내용상으론 주식회사·상호회사·자산운용사의 성격이 혼재돼 있다. 따라서 상장되는 생보사의 주식 가치엔 주주와 보험계약자의 몫이 섞여 있다.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이러한 생보사의 성격을 ‘다중 법인격성’이라고 표현했다. 동일 인물안에 성질이 다른 인격이 동시에 존재해 때로는 다른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심리학 용어를 변용한 것이다.

이 글을 쓰던 중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새 국무총리 후보자에 지명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지금은 초등생 아들의 책 때문에 베란다로 밀려난 내 책꽂이엔 정운찬 교수의 이 꽂혀 있다. 능력과 무관하게 고시를 준비해볼까 하던 무렵, 경제학 수험도서로 ‘원론은 조순, 거시는 정운찬, 미시는 이준구’가 대세였던 걸로 기억한다. 세 사람 모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였다. 이제 ‘거시’도 ‘원론’을 따라 사실상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미시’만 남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순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정운찬 교수는 서문에서 ‘조순 선생님으로부터 케인스의 일반이론을 배웠다’면서 케인스주의자의 한 사람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거시경제학의 논쟁’ 편에서 분배보다 성장, 형평보다 경제적 자유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공급경제학’을 비판했다. 특히 감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부자의 경제학’이라고 야유했다. 정 교수는 결론적으로 ‘경제학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세계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했다. 총리 내정 발표 직후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철학에서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선비와 정승이라는 ‘다중 직업인격성’이 작동된 것으로 믿고 싶지 않다. 사회·경제적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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