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를 즐기는 미스터 조커와 고스톱의 고수 타짜씨가 만났다. 타짜는 고스톱을 치고 싶었지만 조커가 황금 칩을 가지고 있는 걸 보고 마음을 바꿨다. 포커 게임이 시작됐다. 처음에 고전하던 타짜는 동물적 감각을 발휘해 점차 판세를 역전시켰다. 타짜 옆엔 황금 칩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커가 제안했다. “황금 칩을 다시 주조해 가져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 그냥 종이로 만든 칩으로 포커를 하자. 게임이 끝나면 황금 칩으로 바꿔주겠다.”(금 본위제를 달러 고정 환율제로 바꾸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등장) 경기는 계속됐고 타짜 옆에 이젠 종이 칩이 수북해졌다.
배달 온 자장면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던 타짜는 문득 의심이 들었다. “조커가 부자라고 하지만 정말 이 많은 종이 칩을 바꿔줄 만한 황금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까?” 그 사이에 포커 은행을 다녀온 조커는 황금이 아닌 새로 만든 종이 칩만 잔뜩 가져왔다. “이 종이 칩만 있으면 당신 화투 동네의 삼봉과 우리 카드 동네의 블랙잭은 물론 다른 동네의 마작까지 모두 즐길 수 있다. 그러니 이제 황금 칩은 잊어라”(달러를 금으로 못바꿔준다는 스미스소니언 협약) 잠시 생각하던 타짜는 새 종이 칩을 받지 않고 이미 따놓은 종이 칩을 조커에게 빌려주는 방식으로 경기를 속개했다. 종이 칩을 너무 많이 가져오면 조커의 적자가 커져 포커 게임을 중단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타짜가 화투 동네에 돌아와보니 종이 칩이 부족해 난리였다. 노름빚 때문에 살림이 어려워진 카드 동네가 칩을 빼가기 시작했고 덩달아 힘들어진 다른 동네들도 칩을 돌려달라고 나선 탓이다. 그러나 화투 은행은 불행히도 종이 칩을 찍어낼 수 없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외채국이다. 외환보유고도 없다. 그런데도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유일한 제국이다. 외채가 자국 화폐인 달러로 표기되기 때문이다. 기축통화를 가진 발권국의 특권이다. 빚을 달러로 갚으면 되므로 연방은행이 윤전기를 돌려 종이 달러를 찍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종이 달러를 찍으면 위폐범이 된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002년 한 연설에서 ‘헬리콥터 벤’답게 말했다. “미국 정부는 기술을 하나 가지고 있다. 인쇄기라고 부르는데, 정부가 채권을 찍으면 연방준비은행은 달러를 찍어 사주면 된다.”(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야 한다는 말의 원조는 통화론자 밀턴 프리드먼이라고 한다.) 물론 비용은 거의 안 든다.
하지만 불이 난 월가의 미로에 소방차 하나도 제대로 진입시키지 못해 초동 진압에 실패한 그가 과연 헬기 공중전을 잘 수행해낼지는 의문이다. 미국은 능력 이상으로 소비하고 더 많은 집을 짓다가 모래성이 무너졌다. 그런데도 저금리와 빚더미로 일어난 금융 파국을 제로 금리와 정부 부채를 통해 수습하려 한다는 자체가 아이러니다. 구시렁~.
위기가 시작되자 중심부는 주변부에서 돈을 빨아들였다. 한국은 미국의 현금 자동인출기가 됐다. 비상시엔 원화가 진짜 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달러는 이중적이다. 미국 경제가 잘나갈 때는 물론 세계 경제가 아주 나쁠 때도 미소짓는다. 그래서 ‘달러 스마일’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달러 스와프라는 구명보트를 타고 파도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그래서 온갖 음모론과 위기설이 춤을 춘다.
왜 10년 전 외환위기에서 배우지 못했을까? 한국의 경제관료와 경제학자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외환위기가 없는 미국의 경제학이 외환 관리를 비중 있게 다룰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미국이 겪은 대공황에 관한 이론은 확실히 배워왔을까? 한국의 주류 경제학 서적을 보면 경제성장론은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공황 이론은 아예 없거나 경기변동론으로 대체될 뿐이다. 궁시렁~.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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