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비눗방울을 보고 ‘버큼’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영어단어 외울 때 ‘버블’을 거품이라고 쉽게 연결지을 수 있었다. 비눗방울과 달리 자산의 거품은 꺼질 당시엔 보이지 않고 꺼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고 한다.
지난번 글에서 주택의 매맷값(교환가치)은 전셋값(사용가치)과 미래 기대수익(보유가치)이 더해져 구성돼 있음을 살펴봤다. 매매가와 전세금의 격차가 과도하게 벌어지는 것은 실제 사용 목적의 실수요 위에 투기적 목적의 가수요가 얹혀 거품이 생긴 탓이다.
거품을 가늠하는 요소로 자주 인용되는 게 주택의 사용료인 ‘전세금 비율’이다. 매맷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장기 평균치인 50%보다 크게 낮으면 집값에 거품이 낀 것으로 본다. 전세금 비율은 처음 조사가 이뤄진 1999년 1월 당시 51.6%였으며, 2001년 10월에 69.5%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하는 추세다. 국민은행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올 3월 기준 전셋값 비율은 전국 평균 52.7%, 서울 지역 38.9%다. 강남 3구만 떼내면 30%선으로 떨어진다. 이 비율이 오랫동안 40% 밑에서 움직이면 집값 하락을 압박하게 된다. 강남의 전셋값이 매맷값 상승분을 못 따라잡았다는 점은 강남 집값을 교육 여건이나 공급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 없게 한다.
미국도 매맷값 대비 임대료 비율이 줄곧 하락하고 있다. 딘 베이커 미 경제정책연구센터 이사는 집값만큼 임대료가 오르지 않자 워싱턴DC 도심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를 2004년에 팔았다고 한다(‘선수’들은 너무 일찍 팔았다고 비웃겠지만). 집값 급등이 펀더멘털이 아닌 투기로 이뤄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식투자의 지표로 흔히 주가수익비율(PER)을 거론한다. PER(Price Earnings Ratio)는 기업의 이익 대비 주가의 비율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유사한 지표는 집값 임대료 비율인 PRR(Price Rent Ratio)이다. PER가 높으면 순이익에 비해 주가가 고평가돼 투자 위험이 큰 주식이라고 말하듯, PRR가 높으면 연간 임대수익에 비추어 집값이 과도해 거품 주택이라고 본다. 미국 주택 PRR의 역사적 평균은 20을 약간 밑도는데 2006년엔 28을 기록했다. 집값이 연 임대료의 28배란 얘기다. 전셋값을 임대료로 환산한 한국 아파트의 PRR는 얼마일까? 신영증권 리서치센터는 올 서울 지역 아파트의 PRR가 27배로 고평가돼 있다고 분석했다. 강남 아파트의 PRR는 2007년 기준으로 무려 46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임대료 대신 소득을 집값과 비교한 PIR(Price Income Ratio)도 주요 지표다. 연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인 PIR가 5라면 5년 동안 소득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소득이 2배 이상 높은데도, 2006년 4분기 때 2.7이었던 PIR가 지난해 7로 급등하면서 부동산 거품이 폭발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3월 전국의 주택가격은 연소득의 7.5배라고 밝혔다. 서울 아파트의 PIR는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기 직전인 1990년 도쿄의 고급 신축 주택과 비슷한 수준인 12배다. 보통 PIR가 10을 넘으면 거품으로 판단한다. 강남 3구 등 ‘버블세븐’ 지역은 20에 육박한다. 최근 3년 사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서울 가구당 소득 상승률의 4.6배에 이른다는 지난 10월8일 서울시 국정감사 자료는 이러한 수치를 뒷받침한다.
PIR는 개별 가구의 소득수준과 구입하려는 집의 평형 등에 따라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은행은 통계청 자료에 기초해 올 6월 서울 지역의 가구 연소득과 주택가격을 5등분해 중간인 3분위에 속하는 수치를 맞대응시켰다. 중위 그룹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3599만원이고 중간급 주택 평균가격은 4억3552만원으로, PIR는 12.1이다. 전문가들은 중산층이 선호하는 중형 아파트의 가격이 연소득 대비 7배 이하까지 하락해야 정상이라고 본다.
지난해 하반기 금융위기 때 정부는 근거 없는 비관론이 확산되면서 ‘자기실현적 기능’을 하고 있다며 미네르바를 잡아들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부동산 불패 신화도 마찬가지다.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에 사람들이 전염되면서 그 기대감만으로 실제로 가격이 상승하는 ‘예언의 자기실현’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관된 정부라면 근거 없는 부동산 불패 신화와도 싸워야 할 것이다.
한광덕 기자 s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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