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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지수와 미네르바

번지점프 즐기는 변동성 지수와 미네르바의 비관론은 시장의 ‘경고등’
등록 2009-04-28 11:42 수정 2020-05-03 04:25
변동성 지수(VKOSPI)와 KOSPI200 추이

변동성 지수(VKOSPI)와 KOSPI200 추이

‘0 대 5’의 공포. 4·29 재보선을 앞두고 자칫 안방마저 내줄지 모른다는 양대 정당의 위기감을 빗댄 표현이다. ‘0 대 5’는 두 종목(정당)에 투자(투표)하는 시장(선거) 참여자의 ‘공포지수’이기도 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방아쇠가 불을 뿜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식시장 참여자들은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렸다. 사실 공포라는 것은 계량화하기 힘든 심리의 문제다. 하지만 금융공학은 투자심리 지표의 하나로 ‘공포지수’(Fear Index)를 개발했다. 번지점프나 바이킹처럼 공포를 아예 상품화했다.

지난해 9월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부음이 타전되면서 패닉에 빠진 세계 금융시장을 설명할 때 단골로 등장한 미국의 대표적 공포지수 ‘VIX’(Volatility IndeX)는 한국의 ‘미네르바’ 못지않게 유명세를 탔다. VIX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우량 종목 500개의 주가지수인 ‘S&P500’의 변동성 지수다. 변동성 지수는 옵션(미리 정한 가격으로 미래에 주식을 매매할 수 있는 권리) 가격에 반영돼 있는 미래의 주가 향방에 대한 투자자들의 심리를 수치화한 것이다. 쉽게 말해 변동성 지수는 보험의 가격을 반영한다고 봐도 된다. 주가 하락이 걱정되는 투자자들은 손실을 방어하기 위한 보험용으로 풋 옵션(팔 권리)을 산다. 사고칠 가능성이 크면 보험료가 올라가듯, 주가 급락이 예상되면 옵션에 연계된 변동성 지수는 높아진다. 반대로 주가 폭락에 대한 공포가 진정되면 옵션 가격이 싸지면서 변동성 지수도 내려온다.

한국거래소(KRX)도 변동성 지수인 VKOSPI(Volatility index of KOSPI200)를 산출해 지난 4월13일부터 공표하고 있다. 옵션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KOSPI200(한국의 대표적인 200개 종목의 시가총액을 지수화한 것)의 미래 변동성을 측정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여러 금융기관에서 자체적으로 변동성 지수를 산출해왔는데, 이번에 거래소 차원에서 공식 발표하는 것이다. ‘한국판 공포지수’의 탄생이다.

2007년 이후 S&P500과 VIX 움직임의 상관관계는 -0.72다. 1부터 -1까지인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두 지표는 반비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VKOSPI도 지난해 코스피200과 -0.67의 상관도를 나타냈다. 주가지수에 대한 ‘반대 지표’인 변동성 지수는 시장의 위험을 감지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VIX 지수가 20 이하면 ‘흥분 구간’이고 40 이상이면 ‘공포 구간’으로 본다. 지난해 11월20일 VIX는 80.86을 기록해 사상 두 번째로 높았다. 최고치는 1987년 10월 ‘검은 월요일’로, 무려 172.79였다. 2003년 이후 VKOSPI 평균은 26.66이었는데, 지난해 10월29일엔 사상 최고인 89.3을 기록했다.

변동성 지수는 옵션의 내재적 성격 때문에 주가 상승보다 하락에 대한 민감도가 더 크게 나타난다. 공포의 놀이기구가 올라갈 때보다 자유낙하할 때 존재의 의미를 과시하듯, 변동성 지수도 본능적으로 흥분보다 공포를 즐기는 것이다.

지난해 정책 당국자들의 공포지수는 ‘미네르바’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미네르바가 다음 아고라에 ‘외화예산 환전업무 전면 중단’ ‘정부, 달러매수 금지 긴급공문’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시점을 전후해 정작 한국판 공포지수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큰 움직임이 없었고 방향은 되레 하락 쪽이었다. 미네르바가 시장을 혼란시키고 공익을 해쳤다는 정부와 검찰의 주장에 VKOSPI는 동의하지 않은 셈이다. 공포를 조장해 국가 신인도를 깎아먹었다는 이유로 미네르바를 ‘손봤다면’ 공포지수를 실시간으로 공표하는 한국거래소도 잡아들여야 형평에 맞을 것이다. 국가의 공신력으로 미래에 대한 공포탄을 연일 쏘아대고 있으니 말이다.

예언은 자기실현적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예고된 위기는 더이상 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탐욕을 경계하고 공포를 대비하는 예방주사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검은 10월’의 벽두에 미국 연방은행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해 환란을 넘겨야 한다고 훈수를 둔 미네르바에게 정부는 벌보다 상을 주는 게 옳지 않았을까.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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