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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민 세제가 부른 ‘장마전선’

장기주택마련저축 소득공제 폐지하려다 역풍… 땜질적 세제정책 돌아볼 때
등록 2009-09-25 11:37 수정 2020-05-03 04:25
장마를 몰고 오는 구름으로 덮여 있는 서울 하늘. 정부의 세제개편안과 관련해 지상에도 ‘장마전선’이 형성됐었다.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장마를 몰고 오는 구름으로 덮여 있는 서울 하늘. 정부의 세제개편안과 관련해 지상에도 ‘장마전선’이 형성됐었다.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정부가 때아닌 ‘장마전선’에 허둥대고 있다. 지난 8월25일 정부는 ‘2009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친서민 세제 지원’으로 포장된 기획재정부의 야심작이었다. 하지만 종부세 같은 ‘부자 감세’를 벌충하려고 일몰이 다가온 세제 혜택 금융상품을 대거 정리했다. 그런데 그중 상대를 하나 잘못 골랐다. 대표적 서민 상품이라는 장기주택마련저축(장마)이다.

‘장마’는 이자·배당소득에 대한 비과세와 더불어 연말정산 때 납입금액의 40%를 소득공제받을 수 있다.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장마의 소득공제 혜택을 내년부터 없애기로 했는데, 문제는 소득공제 폐지를 기존 가입자에게도 소급 적용한 것이다.

장마는 재형저축, 장기주식저축, 근로자우대저축 등 추억의 세제 혜택 상품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 인기 상품이다. 가입자 중 소득공제 대상자만 140만 명에 이르는 ‘유권자’ 집단이다. 즉각 가입자들이 반발했고 한국납세자연맹 주도로 반대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정부를 상대로 한 ‘장마전선’이 펼쳐친 것이다. 당황한 기획재정부는 9월15일 보완책을 내놨다. 올해 말까지 장마에 가입한 근로자에 한해 앞으로 3년간 소득공제 혜택을 연장한다고 물러섰다.

재정부는 당초 장마에 소득공제와 비과세라는 세제 혜택이 중복돼 있고, 비용이 아닌 저축에 대해 공제를 해주는 것은 과세 원리에 맞지 않다는 점을 소득공제 폐지 사유로 들었다. 또 고소득자도 수혜를 입고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에서 신설한 ‘녹색 펀드’에 비과세와 소득공제의 이중 혜택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설명은 모순된다. 정부가 인정한 녹색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녹색 펀드의 소득공제 대상이 되는 가입자 납입액 한도(3천만원)도 750만원이 한도인 장마보다 훨씬 비서민적이다. 또 고소득자의 수혜를 문제 삼아놓고선 보완책에서 소득공제 대상자 자격의 과세표준을 8800만원 이하로 높게 잡은 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2007년 국세통계를 보면, 소득이 8천만원을 넘는 노동자는 전체 납세 노동자의 2.2%에 불과하다.

사실 세제 혜택이라는 용어는 중립적이지 못하다. 정부의 정책적 필요에 따라 세금 감면을 활용하는 것이면서도 시혜적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올해 가입자까지 소득공제와 비과세 혜택을 부여한 장기 주식형 펀드는 2008년 10월 증시 급락을 막기 위해 도입했다. 이제 증시가 안정됐으니 더는 세제 조처를 연장할 필요가 없게 됐다. 증시가 다시 불안해지면 비슷한 형태로 부활할 것이다. 정부가 세원을 포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는 이제 화장실을 다녀왔으니 공제율이나 한도를 자꾸 낮추려고 한다.

단기적인 세제 손질은 되레 역효과를 부르기도 한다. 올해 말로 끝나는 국외펀드 비과세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07년 당시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국외펀드의 주식 매매 차익에 비과세를 했다. 국외펀드 가입액을 늘려 국내에 넘치는 달러가 국외로 나가도록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그 뒤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서 되레 달러가 부족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특히 환율이 치솟은 지난해 하반기 금융위기 국면에서 정부는 수십조원의 달러를 유출시킨 국외펀드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근시안적인 국외펀드 비과세가 외환위기에 일조한 측면도 없지 않다.

‘13월의 월급’이라는 연말정산 계절이 돌아오면 직장인들의 얼굴엔 희비가 엇갈린다. 소득공제에 따른 세금 환급액의 양극화도 벌어진다. 연봉이 많을수록 세금을 더 많이 돌려받는 경우가 많다. 소득 구간별로 과세가 누진적으로 이뤄지므로 세율이 높아 원천징수 때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이 소득공제 땐 거꾸로 세금을 더 많이 차감받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고소득자일수록 연금저축이나 장기 주식형 펀드 등 소득공제가 되는 금융자산에 투자해 세금을 통째로 돌려받아 비자금이 쏠쏠히 생긴다. 반면 생활이 빠듯한 서민층은 장마에 가입할 여유자금도 없다. 그저 인적 공제 수준에서 연말정산을 마치다 보면 되레 세금을 더 토해내야 한다. 연말정산의 역진적 성격이다. 소득 구간에 연동해 세금이 줄어드는 소득공제보다는 요건만 갖추면 평등하게 일정액을 차감해주는 세액공제를 늘려주면 안 될까? 물론 국세청은 펄쩍 뛰겠지만 고민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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