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벌써 두 시간 반. 컴퓨터 앞에 굳어 있은 지 시간이 그렇게 지났다. 또 어깨가 아파온다. 의자에 푹 기대볼까, 등을 쭉 밀어보지만 힘없는 의자 등받이는 그냥 밀려버려 소용이 없다.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다가 종이 한 장, 펜 하나를 들고 벌떡 일어섰다. PC 쓰느라 어깨 아픈 현대인에 대한 글까지 PC 앞에서 어깨 아파하면서 쓸 순 없지. 홀연히 옥상으로 올라가 펜을 잡고 앉았다. 오랜만에 손글씨를 쓰려니 좀 삐뚤빼뚤해도 자세가 바뀌어서 그런지 몸이 한결 가뿐하다.
예전 회사에서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류 대리는 병원에서 VDT(Visual Display Terminal) 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았다. 맞다,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컴퓨터를 사용하는 직장인 60%가 걸렸다는, 피로·목 통증·손의 마비나 경련·눈 피로·불안·우울증 등이 나타난다는 바로 그 질병 말이다. 그즈음 그는 직장인 야구단에 가입했는데 운동을 하려 해도 이젠 팔이 아파 공 하나 제대로 던질 수 없다고 했다. 늘 통증을 호소하며 월급보다 병원비가 더 많이 나가는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요양을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업무 능력과 집중력이 좋았던 그는 한번 자리에 않으면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며 서너 시간 정도 자리를 뜨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직장 생활이 길어질수록 ‘희생자’를 목격하는 횟수도 는다. 이번엔 바로 뒷자리, 유 팀장이다. 열흘 전부터 목과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다니더니 며칠 전부턴 결국 한의원에 다니고 있다. 찜질을 하고 침도 맞았지만 아직까지도 아프단다. 마감 때마다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창의력을 발휘하는 그이기에 통증이 있든 없든 이번주에도 그는 PC 앞에 매여 있을 것이다. 보다 못한 편집장(그 역시 목이 아프다)은 그에게 점심시간에 요가를 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도 그는 3시간째 꼼짝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너도 아프고 나도 아프니 사무실마다 VDT 증후군을 예방해보려고 야단이다. 옆 사무실 벽에는 한국산업안전관리공단에서 내놓은 ‘20분 모니터 본 뒤 20초 멀리 보기’식의 ‘휴식 시간에 할 수 있는 스트레칭’ 그림이 붙어 있다. 우리 사무실에서도 일괄적으로 노트북 받침대와 키보드를 구매했다(설치 당시 다른 부서 사람들이 구경하고 가기에 괜히 으쓱했다). 회사에서는 옥상에 운동기구를 설치하기도 했는데 바쁜 업무에 치이다 보면 목 한 번 돌려주기도 버겁다는 사람들이 대세다.
이런 와중에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한 기업의 의자 이야기가 히트를 치고 있다. “그 회사 가면 의자만 100만원짜리를 준다더라. ○○체어라고 소매가가 100만원 이상인데 거긴 대량 구매해서 75만원 정도에 들였다나봐. 기대면 그렇게 편하다는데 회의실까지 전부 그 의자를 놨다니 얼마나 일할 맛 나겠어. 만날 목, 어깨, 허리 아파서 몸 비트는 우리 회사 사람들을 보면 그 회사로 가고 싶다니까.” 이 말을 하는 사람도 진지하게 이직을 고려 중이라니 ‘단순히 의자 하나’의 문제를 넘어서는 셈이다. 이토록 뼛속 깊이 문제를 느끼면서도 PC 앞에만 앉으면 굳어버리는 사람들이 안쓰러워 ‘얼음 땡!’이라도 외쳐주고 싶다. 우선 나에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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