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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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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여성 킬러가 ‘노화’에 대처하는 법

속도보다 정확도, 작용-반작용을 이용하라… 격투의 고정관념 깨고 보기 드문 액션 연출한 영화 ‘파과’
등록 2026-01-15 21:56 수정 2026-01-21 18:18

 

영화 ‘파과’에서 60대 여성 킬러로 정확도 높은 격투기 액션을 선보인 배우 이혜영. 수필름 제공

영화 ‘파과’에서 60대 여성 킬러로 정확도 높은 격투기 액션을 선보인 배우 이혜영. 수필름 제공


해가 바뀌면 격투가들의 엄살도 늘어난다. ‘한 살 더 먹었네’ ‘한 해가 다르다’는 탄식 섞인 말이 오간다. 1월1일을 기점으로 갑자기 늙을 리 없다. 그동안 쌓아두기만 했던 노화에 얽힌 당혹감과 두려움을 한 살 더 갱신한 김에 입 밖에 꺼내보는 것이리라.

‘파과’는 킬러인 주인공이 노인이 되면서 겪는 고난을 다룬 영화다. 구병모의 소설 원작과 이야기의 틀은 거의 같다. ‘조각’이라고 불리는 주인공은 사회에 해악만 끼치는 이들을 살해하는, 그들이 ‘방역’이라 부르는 일에 종사한다. 젊어서는 유능했던 그도 예순 살이 넘자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하는데 특히 새로 들어온 ‘투우’가 그를 못마땅해한다. 어느 날 방역 중에 크게 다친 조각은 의식을 잃은 채로 이웃인 강 선생에게 수술받고 신분이 노출되면서 위기에 처한다.

‘노화’라는 치적명 약점

평생 단조롭고 건조하게 살던 조각에게 노화란 보통 일이 아니다. 노화로 인해 젊었을 땐 겪지 않던 굴욕을 겪고 실수가 잦아지고 불안에 시달린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것이 예전만 못하다. 태어난 순간부터 성장을 향해 내달린 인간에게 몸이 퇴화하는 건 몹시 당황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조각은 킬러가 아닌가. 일반인도 감당하기 힘든 노화가 그에겐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60대 킬러는 이 절망적인 국면을 나름의 방식으로 헤쳐나간다. 우선 그는 힘이나 속도보다 정확도에 치중한다. 나이 든 킬러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배우 이혜영씨의 동작을 보면, 공격하면서 상대에게 밀착하거나 방어하면서 거리를 벌릴 때 속도는 조금 느리지만 정확도는 높다.

조각이 추구하는 높은 정확도는 격투기의 궁극적 지향이기도 하다. 격투기 훈련의 목표는 자기통제다. 그리고 격투기에서 잘 싸운다는 것은 상대를 이기는 데 그치지 않고 정확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맞은 타이밍에 정확하게 공격하고 방어하고자 훈련한다. 할까 말까 주저하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주짓수에서는 공격 기술을 배울 때 처음 상대의 소매나 라펠(옷깃)을 잡는 ‘그립’이라 부르는 손의 위치를 기술을 완전히 마무리할 때까지 유지하라고 가르친다. 잡았던 그립을 놓고 다른 곳을 다시 잡는 식의 군더더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나는 이런 섬세함과 정확함이 주짓수를 아름답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런 훈련을 오랫동안 반복한 이들은 조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힘을 덜 들이면서도 정확하게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순발력과 대비되는 노련함이다.

조각의 스승인 류도 반응이 빠른 게 전부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조각이 초보 킬러일 때 류가 기습적으로 유리컵을 던진다. 날아오는 컵을 곧장 피하는 조각에게 그는 아무 데서나 빠르게 반응하면 신분이 노출될 수 있으니 때로는 머리가 깨지더라도 신분부터 감추라고 한다.

*https://youtu.be/68U6_pR0Jjg?si=FGd8a4K2aDykRNq1

‘상대의 힘’을 흡수해 반격

주인공이 정확도와 함께 추가로 활용하는 건 상대의 힘이다. 이 영화를 나보다 먼저 본 지인이 “영화에서 나이 든 여성이 그렇게 많이 맞는 건 처음 봤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주인공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맞는다. 그러나 조각이 맞는 건 상대의 힘에 밀리거나 반응 속도가 느려서가 아니다.

격투기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물리법칙이 ‘작용-반작용의 원리’다. 상대의 힘에 무작정 맞서는 게 능사가 아니다. 큰 충격을 피하려면 오히려 몸 전체로 상대의 힘을 흡수해야 하는데 이를 흔히 ‘상대의 힘을 받는다’, 혹은 ‘상대의 힘에 올라탄다’고 표현한다.

또 상대에게 하나의 수를 내주고 다음번 수를 쓰도록 유도하는 것도 기술이다. 조각은 한 번 맞고 상대가 한 번 더 움직일 때 그 틈에 생기는 공간을 활용하거나 상대가 팔다리를 휘두르며 균형을 잃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반격의 기회로 삼는다.

‘파과’는 이렇듯 신체 능력이 전부일 것 같은 격투의 고정관념을 깨고 신체 이외의 요소를 활용해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약자의 의지를 조명한다. 무엇보다 ‘파과’의 가장 큰 미덕은 액션을 그저 구색 갖추기로만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각은 사연이 많은 인물이고 그의 개인사 위주로 극을 전개할 수도 있지만 감독은 액션에 비중을 크게 할애하고 다양한 상황에서의 액션을 선보인다. 특히 후반부의 총격 장면까지 공들여 연출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민규동 감독은 ‘여고괴담’과 ‘허스토리’ 등의 대표작을 통해 개성 강한 여성 캐릭터를 창조한 바 있다. 이러한 이력이 ‘파과’에도 이어져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탄생했다.

사실 조각에게 닥친 가장 큰 시련은 축적된 시간이다. 따지고 보면 노화도 시간의 일부이다. 그가 살면서 행했던 일, 다 지나간 줄 알았던 과거가 시간과 함께 돌아온다. 류는 조각에게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각을 구해주었고 제자는 스승의 따스함까지 그대로 흡수한다.

회한에 잠길지언정 절망하지 않는다

조각은 방역을 다니면서 과거의 자신처럼 누구보다 도움이 절박한 이들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사이 자기도 모르게 지킬 것을 만들었고 그 약한 존재가 나타나 칼을 겨눌 때 지나간 날들을 돌아본다.

그러나 그는 회한에 잠길지언정 절망하지 않는다. 류가 지어준 조각의 원래 이름은 ‘손톱’이다. 손톱은 양면적이다. 손의 연약한 부분을 보호하기도 하고 그것을 날카롭게 세워 타인을 공격하기도 한다. 그는 류가 죽고 ‘짐승의 발톱’이라는 뜻의 ‘조각’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결말에서 옛 이름을 되찾는다. 다시 살아도 같은 방식을 고집할,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자기방어 기술- 상대의 힘에 올라타는 법

작용-반작용의 원리를 활용한, 대표적인 자기방어 기술 세 가지를 소개한다. 상대가 힘으로 밀고 들어올 때 정면에서 힘을 받고 있을 게 아니라 몸을 틀어 방향을 바꾼다. 상대의 힘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공격을 쉽게 피할 수 있다. 상대가 잡아당길 때는 고정점을 만들어서 끌려가는 걸 방지한다. 예를 들어 상대가 손목을 잡고 끌고 갈 때 두 발의 간격을 넓히고 자세를 낮추면서 무게중심을 아래에 두면 고정점이 생겨서 버티기 쉽다. 마지막으로 상대의 힘을 몸의 일부가 아니라 온몸으로 받는 기술인데 이는 어려워서 연습이 필요하다. 이때도 무게중심을 낮춰야 하고 몸을 둥글게 말거나 부드럽게 구른다.

양민영 주짓떼라·‘운동하는 여자’ 저자

*액션 읽는 여자: 여성 주연 영화를 보며 여성의 시선으로 ‘싸우는 몸’을 발견하는 시간. 여성의 몸을 향한 협소한 시선을 확장하는 칼럼.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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