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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박 영화 ‘맵고 뜨겁게’, 성장물이야 감량물이야?

50㎏ 감량한 여주인공 성공 서사가 말하지 않은 것, 그리고 내가 체중 3㎏ 줄여 주짓수 대회 도전하며 느낀 점
등록 2025-07-17 22:52 수정 2025-07-22 07:35
영화 ‘맵고 뜨겁게’에서 주인공 러잉의 감량 전 모습. 넷플릭스 제공

영화 ‘맵고 뜨겁게’에서 주인공 러잉의 감량 전 모습.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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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중국 영화계에 흥행 돌풍을 일으킨 ‘맵고 뜨겁게’는 30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여성이 복싱 선수로 거듭나는 성장물이다. 관객이 한심하고 무기력한 주인공 러잉을 응원하게 되는 극적 장치는 다름 아닌 혹독한 감량이다. 극의 중반까지도 비만이던 러잉은 복싱 대회를 준비하면서 체중을 무려 50㎏이나 줄인다.

 

주짓수 대회 도전에서 ‘감량’을 포함한 이유

복싱 영화에서 감량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각성한 주인공이 달리기, 줄넘기, 계단오르기 등 체력 훈련을 반복하는 동안 지방이 빠지고 근육의 결이 살아나며 눈빛마저 날카로워진다. ‘맵고 뜨겁게’는 비만 여성을 내세워 이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조명한다.

다분히 의도된 연출인데도 감량하는 과정은 특별한 감흥을 일으킨다. 강함과 용맹의 상징인 격투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몸집을 키우는 게 아니라 작고 가벼워진다는 건 얼마나 모순적인가? 그러나 이는 모순인 동시에 초인적인 인내와 이기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덩치가 줄어드는 데 반비례해 그의 아우라는 크고 강해진다.

러잉에겐 명함도 못 내밀지만 나도 2025년 6월 한 달을 감량에 바쳤다. 국제브라질리언주짓수연맹(IBJJF)이 2025년 6월19~22일 일본 지바현에서 연 아시안 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해 체중을 3㎏가량 줄였다.

 

2025년 6월 국제브라질리언주짓수연맹 아시안 챔피언십에 출전한 필자 양민영씨(왼쪽). 양민영 제공

2025년 6월 국제브라질리언주짓수연맹 아시안 챔피언십에 출전한 필자 양민영씨(왼쪽). 양민영 제공


주짓수 대회에서 여성 선수는 라이트급이 64㎏이고 바로 아래인 페더급이 58㎏인데 내 몸무게는 두 체급의 중간이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운동과 생업을 병행하는 아마추어로서 트레이너와 영양사가 도와주는 것도 아닌데 감량 없이 라이트급으로 출전하는 게 여러 면에서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도전을 영상으로 남기기로 결심하면서, 감량도 포함하고 싶었다. 콘텐츠의 타이틀은 ‘이기러 일본에 갑니다’지만 승패보다 중요한 건 영상(영상 주소 : https://youtu.be/piIStfSEPpY?si=k0R6VZd6vnxAR9Lp) 을 보는 이들의 감정이입 아닌가? 그러자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한 여성의 시행착오 또는 고생담이 필요했고, 평생 다이어트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무니 공감대를 얻기도 쉽다.

 

‘뭘 모르는’ 감량이 낳은 컨디션 저하

도전의 결과부터 말하면 보기 좋게 패했다. 절대적인 경험치도 부족하고(주짓수 대회에 관해 여러 편의 글을 썼던 것에 견줘 대회 경험은 국내 대회 두 번이 고작이다) 기술이나 정신적 면에서도 다듬어지지 못했고, 상대 선수의 기량은 나보다 우위였다. 무엇보다 어떻게 해야 이 게임에서 이기는지에 관한 로드맵(단계별 계획)이 부재한데 감량 역시 요령이랄지 노하우랄 게 전혀 없었다. 다이어트를 평생 내려놓지 못하는 일반적인 여성의 행동 강령, 즉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인다’가 전부였다.

격투 경기에서 감량은 필수인가? 필수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감량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건 확실하다. 특히 고액의 상금을 걸고 싸우는 선수들일수록 체급을 조금이라도 더 낮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체급을 낮추는 경향이 확고해짐에 따라 감량하지 않고 출전하면 더 높은 체급의, 감량으로 체급을 낮춘 상대와 맞붙게 된다. 의도적으로 체급을 낮춘 이들은 해당 체급 선수들의 평균보다 힘과 신체 조건에서 유리하다. 근육량이 더 많고 일반적으로 키가 커서 팔다리도 더 길다고 봐야 한다.

체급 낮추기 경쟁은 갈수록 극단적으로 흐르고 있다. 미국의 재러드 캐노니어는 106.6㎏의 헤비급 파이터인데 20㎏도 넘게 감량해서 미들급인 84.4㎏까지 체급을 낮췄다. 무리한 감량은 선수의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경쟁의 본질을 흐린다는 비판도 많았다. 마구잡이식 감량은 컨디션 저하로도 이어진다. 내 경우가 그랬는데, 상대는 나보다 작아 신체 조건은 내가 우위였으나 저조한 컨디션과 부족한 힘으로 인해 강점을 살리지 못했다. 시작부터 테이크다운(태클 등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에 휘말려 2점을 내주고 백마운트(다리로 상대의 허리를 감고 등 뒤에 올라타는 자세)와 마운트(상대의 몸 위에 올라타는 자세) 포지션을 고루 내주며 총 10점을 내주고 패했다.

영화 ‘맵고 뜨겁게’는 감량의 부작용이나 문제점은 다루지 않는다. 감량으로 인한 영광과 인간 승리만 보여준다. 러잉은 30대 선수로 나이가 많은 편이고 심지어 낮에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하고 밤에 식당에서 일하는데도 두 가지를 다 해낸다. 러잉이 50㎏ 감량 이후 ‘아픈 거 아니야, 복싱해서 그래’라고 설명하는 장면은 감량 전 등 돌린 가족과 다시 만났을 때 한 번 나온다. 고작 3㎏을 감량한 나는 ‘어디 아프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는데 말이다.

러잉을 연기한 배우 자링은 촬영 전에 40㎏을 증량했고 다시 50㎏을 감량했다. 동시에 연출까지 도맡았다. 자링은 촬영 내내 강도 높은 운동량을 소화하면서 연출까지 하느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수면제 없이 잠들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감량이 능사는 아니다

그의 고군분투에 보답이라도 하듯 춘절 기간에만 관객 4천만 명이 ‘맵고 뜨겁게’에 열광했다. 장점이 많은 영화지만, 한편으론 대중이 ‘비만 여성의 다이어트 성공 서사’에 즉각 반응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감량 전 러잉은 가족에게 멸시당하고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기고 방송에서 악마의 편집에 희생되는 등 마땅히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도 참기만 한다. 분노할 줄 모르고 자존감 없는 캐릭터는 ‘비만 여성’에 대한 편견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그런 그가 자존감을 되찾는 계기는 감량이다. ‘나태’와 ‘탐식’에서 벗어나 가시밭길을 걸으며 죗값을 치른 ‘다이어트에 성공한 여성’은 현대의 성녀인 셈이다.

나는 주짓수 대회를 계기로 감량의 득과 실을 일부 알게 됐다. 신체 조건의 우위를 우선할지, 컨디션 유지를 우선할지에 따른 감량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한다. 자신에게 맞는 훈련량과 몸무게를 찾아가는 과정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따를 수밖에 없다. 감량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과제로 남았다. 앞으로 체급에 몸무게를 맞출지, 몸무게에 체급을 맞출지 더 고민할 일이다.

 

감량, 어떻게 건강하게 할까

체급을 낮추기 위한 감량은 어떻게 해야 할까? 수련 18년차 주짓수 블랙벨트 소유자이자 2018년과 2022년에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2024년 국제브라질리언주짓수연맹 아시안 챔피언십 3위를 기록한 ‘슬로 주짓수’의 이경섭 관장에게 물었다.

감량 기간은 보통 3주, 길게는 4주로 잡는다. 운동량은 평소와 동일하게, 혹은 더 늘리면서 식사량을 줄인다. 튀김류와 혈당을 높이는 음식을 제한하고 끼니마다 단백질, 탄수화물, 적당한 지방을 보충한다. 세끼를 모두 챙겨 먹되 마지막 식사와 다음날 아침까지의 공복 시간을 길게 잡는다.

경기 전날 체중이 체급 기준보다 1.5㎏가량 웃돌면 감량이 다 됐다고 본다. 이때부터 수분 섭취를 줄이고 달리기나 반신욕으로 체내 수분을 배출한다. 경기 당일에는 힘을 내는 데 유리하면서 포만감을 주는 탄수화물, 예를 들면 흰쌀밥을 먹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국외 대회일지라도 정확하게 작동하는 체중계를 지참해 몸무게를 수시로 체크하기다.

 

양민영 주짓테라·‘운동하는 여자’ 저자

 

*액션 읽는 여자: 여성 주연 영화를 보며 여성의 시선으로 ‘싸우는 몸’을 발견하는 시간. 여성의 몸을 향한 협소한 시선을 확장하는 칼럼.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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