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합격투기 선수 지나 카라노가 주연을 맡은 영화 ‘헤이와이어’는 여성의 사실적인 싸움을 보여준다. 네이버 영화 포토 갈무리
실전은 격투가들 사이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거리다. ‘규칙이나 제약이 없는 길거리, 범죄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싸움에 어떤 무술이 가장 잘 통하는가’를 두고 논쟁에 불이 붙는 모습은 마치 종교인들이 종파를 나눠 정통성을 따지는 것 같다.
이 실전 논쟁에서 자주 호출되는 대상이 바로 여성이다. 규칙과 제약이 없는 상황에서 약한 여성이 가장 먼저, 쉽게 꺾일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 극단적으로는 여성의 자기방어가 무용하다고까지 주장한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한 영화 ‘헤이와이어’는 스포츠로 단련된 여성의 사실적인 싸움을 보여준다. 개봉 당시 사실주의 액션의 대표작인 ‘본(Bourne) 시리즈(기억상실에 시달리는 첩보원 제이슨 본을 주인공으로 만든 액션스릴러)의 여성 버전’이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서사는 뒤섞이고 얽히고 고장 났다. 사건을 불규칙한 역순으로 재구성해 관객의 추리를 유도하는 소더버그 감독 특유의 장기가 살아 있다.
주인공 맬러리 케인은 정부의 작전을 수행하는 사설 업체의 첩보원이다. 조직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마지막 작전을 수행한다. 작전을 수행하던 케인은 동료들의 배반으로 목숨을 잃을 뻔하고 간신히 도망친다. 그는 누가 음모를 꾸미는 건지 밝히고자 추적에 나선다.
종합격투기(MMA) 선수로서 MMA 무대에서 써 내려간 화려한 전적답게 케인 역을 맡은 지나 카라노의 활약은 눈부시다. 우선 그의 강한 몸이 무한한 신뢰와 사실성을 확보한다. 여성 주연의 액션영화에서 액션이 아무리 현란해도 근육이라고는 없는 앙상한 팔이 화면에 잡히거나 코어 힘으로 밀어붙여야 할 움직임이 나오지 않으면 실망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카라노는 해병대 출신의 첩보원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의 주특기인 그래플링(주짓수·유도·레슬링 등 상대를 잡아 바닥에서 누르고 제압하는 격투기)과 킥복싱도 볼거리다. 촬영을 위해 단기간 훈련받은 배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수 시절부터 체화된 기술이 첫 액션 시퀀스가 시작되자마자 진가를 발휘한다. 그는 총을 겨누는 옛 남자 동료의 팔을 암바(지렛대 원리로 팔을 꺾는 주짓수 기술)로 부러뜨리며 앞으로의 전개에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MMA 선수인 카라노가 실전적 요소를 가미한 영화에서 맹활약함으로써 스포츠와 실전, 두 세계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이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케인과 폴이 호텔방에서 벌이는 맨몸 액션이다. 폴은 케인과 부부로 가장한 동료인데 사실은 케인을 제거하는 계획에 적극 가담했다. 폴은 함께 음모를 꾸민 상관에게 케인이 얼마나 강한지 물어보면서 자신은 아직 여자를 죽여본 적이 없다고 한다.

종합격투기 선수 지나 카라노가 주연을 맡은 영화 ‘헤이와이어’는 여성의 사실적인 싸움을 보여준다. 네이버 영화 포토 갈무리
둘의 싸움은 MMA 무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주짓수의 상징적 기술인 기요틴초크(상대의 목을 팔로 감싸 압박해 경동맥을 조르는 기술)와 트라이앵글초크(다리로 삼각형 형태를 만들어 상대의 경동맥을 조르는 기술)가 등장한다. 폴은 케인의 기요틴초크를 간신히 방어하지만 곧이어 트라이앵글초크로 목이 졸려 기절한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그는 처참하게 패배한 선수처럼 다급하게 ‘탭을 친다’(격투기에서 항복의 의미로 손바닥이나 불가능하면 발로 상대의 신체를 두드리는 행위).
앞서 언급한 실전에서 어떤 무술이 가장 잘 통하는지를 다투는 ‘실전 논쟁’이 결론 없이 반복되는 건 실전을 정확히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 가정이 끼어들면 총칼이 등장하는 실전도 있고 여러 명이 한꺼번에 덤비는 실전도 있다. 반면에 스포츠는 규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전과 대비를 이룬다. 스포츠는 선수를 보호하고 공정성을 보장하는 규칙을 준수한다. 성별 대결을 금지하고 체급을 나누고 위험한 기술은 반칙으로 분류한다. 선수는 규칙의 보호 속에서 기술을 제대로 구사하면 점수를 받고 경기를 중단하고 싶으면 탭을 친다. 그러나 실전에는 점수도, 탭도 없다.
폴이 바닥을 치며 항복하는 장면은 MMA 팬인 감독의 회심 어린 한 방이다. 시종일관 가짜 남편을 연기하며 신사적인 척하던 그는 막상 싸움이 시작되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총력을 다해도 수세에 몰리자 급기야 탭으로 목숨을 구걸한다. 이처럼 위선적이고 비겁한 남자를 마이클 패스벤더(부드러운 이미지로 영화 제작·개봉 시기인 2010년대에 여성팬에게 인기가 많았다)가 연기한 것도 절묘하다.
영화가 끝나고 드는 생각은 ‘실전이란 뭘까?’였다. 취재차 한 가지 무술을 십수 년씩 수련한 전문가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에게 실전에 대해 질문하면 저마다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매트 위나 거리에서나 격투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이다. 우리의 시간과 능력은 한정적이어서 위험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건 결국 평소에 연습한 움직임이다. 스포츠는 이 연습을 가장 효율적으로 체계화한 것이고 그렇게 연습한 움직임이 실전에서 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폴이 트라이앵글초크에 걸린 채 탭을 치는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섬뜩하다. 스포츠에서의 규칙은 폭력을 문명화하는 장치인 동시에 폭력의 위선을 감추는 가면이기도 하다. 가면이 모두 벗겨졌을 때 남는 건 훈련한 몸, 그리고 그 몸을 향한 신뢰뿐이다. 여성의 몸은 쉽게 의심받지만 카라노는 무기나 다름없는 몸을 아무런 장식이나 사족 없이 보여준다. 그의 몸은 그 자체로 여성의 자기방어가 무용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근거다.
양민영 주짓떼라·‘운동하는 여자’ 저자
*액션 읽는 여자: 여성 주연 영화를 보며 여성의 시선으로 ‘싸우는 몸’을 발견하는 시간. 여성의 몸을 향한 협소한 시선을 확장하는 칼럼. 4주마다 연재.
https://h21.hani.co.kr/arti/SERIES/3293
허리, 골반, 다리의 관절은 인체에서 가장 크고 강한 관절이다.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한 여성은 자기방어에서 하체를
활용하면 유리하다. 영화에서 케인이 폴을 기절시킨 것도 트라이앵글초크를 활용해 하체의 강력한 힘으로 취약한 목을 졸랐기 때문이다.
https://youtu.be/eLA-72cNySs?si=QmRtGmvsqXuET1_x
발차기도 좋은 방어 수단이지만 어느 정도 수련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한쪽 발을 들다가 넘어져 오히려 상황이 불리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넘어졌다면 등을 바닥에 대고 안정적으로 지지할 수 있어 발차기가 더 효과적이다. 넘어졌을 때는 다가오는 상대의 무릎 관절을 강하게 차면서 도주할 수 있는 시간과 거리를 확보한다. 얼굴, 명치에 꽂는 킥도 아주 좋은 자기방어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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