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책 읽는 집: 지금 당장 알고 싶은 역사책 29’ 라조기·탕수육 지음, 연립서가 펴냄, 2025
“이제는 다들 역사책을 읽지 않는구나!”
2025년 초 한 유명 온라인서점이 꼽은 ‘21세기 최고의 책’ 목록을 보며 절로 이런 한탄이 나왔다. 최고의 책에 역사책은 거의 없었고, 목록을 만든 전문가 중에도 역사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힙스터는 다 모인 것 같다던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역사책은 많이 주목받지 못했다. 어쩌면 이는 역사책의 문제라기보다 책과 출판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2030 여성이 책의 주된 소비층으로 떠오른 데 비해, 과거 역사책 시장을 떠받치던 ‘아저씨’ 독자들은 유튜브로 가버린 지 오래니 말이다.
‘역사책 읽는 집’은 역사책이 더는 읽히지 않는 시대, 무려 2013년부터 지금까지 200회 넘게 진행된 팟캐스트다. 최근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라조기’와 ‘탕수육’이 같은 제목의 책을 냈다. 두 지은이가 역사책을 소개하는 방식은 남다르다. 여느 유튜브나 팟캐스트가 그러하듯 역사 지식을 요령껏 떠먹여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점이지만, ‘역사’ 읽기와 ‘역사책’ 읽기는 다르다. 그렇기에 이들은 같은 주제를 다룬 역사책 여러 권을 함께 읽으며 내러티브와 문제의식, 논증 방식을 비교한다.
가령 국문학자 강명관과 역사학자 권내현은 16세기 중반 조선 양반 유유의 ‘귀향’을 두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쳐낸다. 강명관의 ‘가짜 남편 만들기, 1564년 백씨 부인의 생존전략’(푸른역사, 2021)은 이 사건이 조선의 ‘매끈한’ 가부장제가 낳은 엽기극이라 평가했다. 반면 권내현의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너머북스, 2021)은 자녀들이 똑같이 재산을 나누던 사회에서 장자가 모든 재산을 물려받는 사회로 이행하던 과도기에 벌어진 해프닝이라 여겼다.
1945년 해방공간의 한반도로 시선을 옮겨보자. 언론인 길윤형은 ‘26일 동안의 광복’(서해문집, 2020)에서 여운형과 안재홍, 송진우 등 구체적인 인물들의 분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역사학자 정병준의 ‘1945년 해방 직후사’(돌베개, 2023)는 여운형이 그렇게 분투할 수 있었던 대내외적 조건들을 치밀하게 추적했다. 광해군을 두고도 한명기는 중립외교를 펼친 현명한 군주라 평가하지만, 오항녕은 그것이 후대인의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이라 비판한다. 계승범은 두 입장 모두와 거리를 두며, 광해군이 진정 골몰했던 바는 왕으로서 절대적 권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라조기’와 ‘탕수육’이 소개하는 역사책들이 가리키는 건 결국 ‘이야기’다. 같은 사건, 같은 인물이라도 누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때론 이야기가 역사를 채 담아내지 못하기도 한다.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돌베개, 2010)은 한국전쟁 때 벌어진 민간인 학살이 통념처럼 이데올로기 대립의 결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학살은 양반과 상놈의 갈등,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 종교적 갈등이 얽힌 ‘복합적 갈등 구조’의 산물이었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돌베개, 2014)가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지목하는 ‘조직되지 않은 시민’은, 기실 그러한 원동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기 고백일지도 모른다.
역사가 곧 이야기라는 말은 그러므로 마음대로 역사를 써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때론 즐기고 때론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이야기 자체의 한계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책을 읽는 재미란 이런 것이다.
유찬근 대학원생
*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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