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제주항공 참사’ 슬픔이 닥친 광주광역시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새해를 맞고 있다. 특히 2024년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2025년의 광주는 ‘책 읽는 도시’로 바뀌고 있다.
1월10일 오후 방문한 광주광역시 동구 전일빌딩245 1층에 있는 ‘카페, 소년이 온다’ 미니북카페에서는 시민들이 소파에 낮아 편안한 자세로 한강 작가의 책을 읽고 있었다. 이곳은 2024년 10월10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직후 광주시가 조성한 공간이다. 하루 평균 500~600명이 찾고 있다. 전일빌딩245는 소설 ‘소년이 온다’의 역사적 배경인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던 장소이자, 도청 진압 작전에 맞서 시민군이 저항하던 곳이다.
북카페에는 한강 작가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1995) 등 초기 작품부터 성인을 위한 동화 ‘내 이름은 태양꽃’(2002), 2016년 맨부커 수상작 ‘채식주의자’(2007),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 ‘소년이 온다’(2014), ‘작별하지 않는다’(2021) 등 한강 작가의 작품 30여 권을 비치해 작가의 작품세계를 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또 오르한 파무크, 아니 에르노, 압둘라자크 구르나, 페터 한트케, 루이즈 글릭 등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도서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원래 2024년 말까지 운영하기로 했으나 시민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광주시는 종료 시점을 정하지 않고 계속 운영할 방침이다.
한강 작가가 어릴 적 감수성을 키웠던 광주 북구 중흥동 생가 인근에도 북카페가 생긴다. 한강 작가는 중흥동에서 태어나 효동초등학교를 다니다 4학년 때 서울로 이사했다.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제 방에 누워 있던 초등학교 4학년 딸에게 ‘뭐 하고 있니?’라고 물었더니 ‘공상이요. 왜요? 공상하면 안 돼요?’라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중흥동은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 문재학 열사가 살았던 동네이기도 하다.
광주시는 큰 기념관이나 떠들썩한 행사를 사양했던 한강 작가의 의사를 존중해 2025년 하반기 연면적 170㎡ 규모 2층짜리 북카페를 조성해 시민 누구나 편하게 들러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인문도시 광주 위원회’도 발족했다. 위원장은 김형중 조선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맡고 이상갑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 신형철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위원회는 2023년 기준 국민 종합독서율(1년 내 1권 이상 읽은 비율)이 43%에 불과한 현실을 고려해 ‘책과 친해지는 문화’ 조성에 나선다. ‘광주시민 매년 1인 1책 읽기 문화’ 확산, 지역서점 활성화, 자치구별 대표도서관 건립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독자·작가·출판사·서점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세부적인 추진 방안을 마련해 독서 생태계 활성화를 꾀한다.
김 위원장은 2024년 11월 발족식에서 “위원들과 지혜를 모아 ‘광주 골목골목까지 책의 영향이 미치고 인문학적 사유가 가능한 광주’ ‘아주 유익하게 멍때리는 사람이 아주 많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 위원회의 역할이고 인문도시라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 멍때리는 사람이 많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광주=글·사진 김용희 한겨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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