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 알란티시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나고 자랐다. 2년 전인 스물다섯 살 때 한국에 왔다. 나는 그를 지인 소개로 알게 됐다. 화면으로 처음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차 안이었다. 한 일간지에 난민 이야기를 실으려 한다고, 네가 겪은 일을 편한 방식으로 써주면 번역해 전하겠다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그가 중고차 매매 단지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았다.
A4용지 두 쪽 남짓한 글에는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빼곡했다. 첫 번째 폭격의 기억은 다섯 살 때. 폭격이 시작되고 그가 살던 집은 마구 흔들렸다.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네 번의 전쟁을 겪어야 했다. 그의 가족은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졌다. 수많은 포탄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남았다.
일을 끝내고 자동차 운전석에 앉은 그의 모습.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쥐고 기도하듯 지난 일을 적는 그의 모습. 사방은 점점 어두워지고,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았다고 했다. 전기가 끊기고 연료가 부족해 다친 사람들이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그의 고통 앞에서 부끄러웠다. 무슨 마음으로 네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 걸까.
그가 활동하는 시민단체의 평화 포스터 전시가 우리 마을 책방에서 열렸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국경이 봉쇄되고 공항이 폐쇄된 그의 고향. 모든 것이 파괴된 그의 고향. 그는 책방에 오는 길에도 끔찍한 뉴스를 들었다고 했다. 구호품 트럭에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이스라엘 군인들이 총격을 가했다는 보도였다. 시민 100여 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그는 전쟁이 자기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말했다.
내가 사는 경기도 파주는 북과 접한 국경도시다. 종종 차를 몰고 임진각에 간다. 드넓은 잔디밭과 탁 트인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11월에는 장단콩 축제가 열린다. 여러 읍면동 부녀회에서 하는 간이식당에서 먹는 순두부 맛이 참 좋다. 삶과 죽음은 손바닥처럼 붙어 있다. 강산에의 두 번째 정규앨범 《나는 사춘기》는 다양한 주제의 곡이 담겼다. 그중 <더 이상 더는>은 “이 노래를 전쟁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영령들에게 바칩니다” 하고 시작한다. “무엇이 옳고 또 무엇이 틀린 건가” 묻는다.
전시 부대 행사로 마을 낭독회가 있었다. 열두 명의 마을 사람이 평화에 관한 시를 읽는 자리였다. 마을 사람 한 분이 팔레스타인 시인 레파트 알아레르의 시 ‘내가 죽어야 한다면’(If I Must Die)을 낭독했다. 1979년 가자지구에서 태어난 레파트는 글쓰기의 힘을 믿었다. 영국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그는 고향에 있는 가자이슬람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쳤다. 그는 2023년 12월6일 가자지구 공습으로 생을 마감했다.
살레는 레파트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지난 넉 달 동안 3만여 명이 사망하고 7만여 명이 부상당하고 7천여 명이 실종됐다는 집계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고. 살아 있는 자는 죽은 자의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고 했다.
전쟁을 바라는 건 누구인가. “더는 누구를 위한다고는 말하지 마”라고 노래하는 강산에는 인제 그만 전쟁을 멈추자고 부르짖는다. 행사를 마치고 몇몇 사람과 함께 밥을 먹었다. 살레도 동행했다. 음식을 나눠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많이 웃었다. 잿빛 도시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나는 무얼 할 수 있나. 무얼 할 것인가.
최지인 시인
*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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