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야카는 문어 모양 미끄럼틀이 있는 작은 공원을 타코 코엔이라고 불렀다. 색 바랜 문어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망루 같은 전망대에 올라 해넘이를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떠난 여행이었다. 올해 초 장편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을에 사는 이주민들과 시를 읽고 쓰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걸 기록해 영화로 만드는 게 목표다. 한국·중국·일본·대만 국적의 사람들이 모임에 나오고 있다.
멤버 중 한 명이 고향에 다녀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경기도 파주에 살며 일본 도쿄에 있는 어느 대학원에서 원격으로 일본어 교육에 관한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제대로 공부하고 오겠다며 일본에 갔다.
우리 다큐멘터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각각 매주 월요일 오전 마을 책방에 모여 시를 읽는 장면, 고향을 걸으며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 마을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쓴 시를 낭독하는 장면이 중심이다. 국내에서 촬영할 수 있는 장면들은 어지간하면 적은 비용으로도 찍을 수 있겠지만 국외 촬영은 사정이 다르다. 출연자가 고향에 가 있을 때 로케이션을 하면 제작비를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잽싸게 촬영감독과 일정을 잡아 일본에 따라갔다.
가까운 선배는 내가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고 하니 브레멘 음악대 같다고 했다. 브레멘 음악대는 나이가 들어 일할 수 없게 된 당나귀가 주인에게 학대를 받다 집에서 도망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당나귀는 브레멘에 가 음악대에 들어갈 작정이었다. 여행 중에 개, 고양이, 수탉을 만나 동행한다. 외롭지 않은 여정이었다.
일본 니가타현에서 태어난 사야카와 1박 2일 동안 그가 태어난 곳부터 다녔던 학교, 자주 가던 공원과 바닷가 등을 같이 걸었다. 살아온 내력을 찬찬히 들었다. 장소에는 많은 기억이 머물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시절도 공간에 가니 자연히 펼쳐졌다. 그는 타임슬립을 하는 것 같다며 추억에 잠겼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부야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는 히라야마씨의 되풀이되는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에는 1960~1970년대 음악이 다수 삽입돼 있다. 패티 스미스의 ‘레돈도비치’(Redondo Beach)도 그중 하나다. 곡의 화자는 호텔에서 말다툼하고 떠나버린 여자를 찾고 있다. 그러다 “레돈도비치에 소녀가 떠밀려오고 모두가 슬퍼한다”는 노래다. 이 곡은 그의 첫 번째 정규 앨범 ‘호시스’(Horses)에 수록돼 있다. 앨범 재킷은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찍었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패티 스미스는 검은 양복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다. 그의 어깨 뒤로 빛이 비친다. “예수는 누군가의 죄를 위해 죽었지만 내 죄는 아니었다”(‘Gloria’)라고 선언하는 시적인 가사와 세련된 멜로디가 반백 년의 세월을 넘어 듣는 이의 가슴에 꽂힌다.
한 사람의 역사가 깃든 장소를 돌아보며 왠지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 무의미한 시간은 없음을 나지막이 일러주는 것 같았다. 사야카가 바다에 있는 테트라포드를 가리키며 어렸을 때 아버지가 거기까지 수영해 굴을 따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가족들이 모래사장에 둘러앉아 굴을 구워 먹었다며 해맑게 웃었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헤어지기 전 그는 저녁놀을 바라볼 때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고 어제의 감정을 전했다.
지나가버린 시간이 우리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파도처럼 기억이 밀려올 때가 있다. 누군가 살아냈다는 것, 그것은 가끔 커다란 위로가 된다.
최지인 시인
*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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